▲ 이바름 사회부

저는 포항 도심에 살고 있습니다. 제 친구들은 전국 어느 도로에서나 볼 수 있습니다. 주변 환경에 따라 쇠나 폴리우레탄같은 재료로 만들어집니다. 몸값은 1만원선부터 10만원대까지 천차만별입니다. 예전에는 키도 작고 말랐었는데, 요즘에는 배도 나오고 몸집이 불어났어요. 그만큼 맷집도 늘어났죠. 저 역시 세월의 흐름이란 걸 실감하고 있답니다.

어제, 제 친구가 누군가에게 밟혔습니다. 몸에는 신발자국이 선명하게 새겨졌죠. 우릴 밟고 넘어가는 일이야 늘 있는 일이지만, 가끔은 너무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조금만 걸어서 돌아가면 되는데, 그걸 못 참는 시민들이 많아서요.

저의 이름은 차선 분리대입니다. 정식 명칭은 그렇지만 흔히 `중앙분리대`나 `무단횡단 방지펜스`라고도 불리죠. 도로 중앙에서 양쪽 차선을 분리하기 위해 처음 만들어졌습니다. 최근에는 시민들의 무단횡단 방지와 교통사고 예방을 위한 용도로 더 쓰이고 있습니다.

제 친구들은 시민들의 교통사고를 예방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보행자 사고도 크게 줄였죠. 도로 한가운데 자리를 잡고 있는 우리를 볼 때마다 시민들은 잠깐이지만 무단횡단을 망설입니다. 대부분은 돌아서 가죠. 경찰이나 지자체에서도 예방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어서 그런지 계속해서 우리를 신뢰합니다.

그런데 사실 좀 힘이 들어요. 한두 명이 아니라 하루에도 수십명, 아니 수백명이 우리를 밟고 지나갑니다. 돌아가기 귀찮으니까요. 이 때문에 허리가 휘어지고 다리가 부러지기도 하죠. 몇 걸음만 돌아가면 안전한 횡단보도가 있는데 몇 초 편하려다 목숨을 내 놓고 굳이 우리를 넘어갑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가만히 있는 우리에게 운전자들은 다짜고짜 돌진해 옵니다. 포항에 사는 우리는 한달 평균 20번이나 병원신세를 집니다. 휴대전화를 보고 있었다든지, 술을 마셨다든지 등 운전자들의 잘못 때문에 말입니다.

일부에서는 일부러 우리를 때려 부수는 일도 있다고 합니다. 몇몇 상인들은 우리가 도로 건너편에서 자신들의 가게로 손님들이 넘어오는 걸 방해한다고 불만을 표시하기도 합니다. 그 책임을 왜 우리에게 묻는지, 개인의 이익을 위해 시민들의 세금을 또 써야 하는지 되묻고 싶네요.

처음 만들어질 때는 큰돈이 들지 않습니다. 천재지변으로 망가지지 않는다면 야광 덧칠만 하면서 오래도록 살 수 있어요. 오히려 우리가 여러 이유로 다쳤을 때 드는 세금이 더 많이 듭니다. 포항시에서만 연간 4천만원 정도를 쓴다고 하네요. 전국적으로 얼마가 될지는 어림도 되지 않습니다. 설치할 때는 작았던 돈이, 누군가 양심을 팔아버린 행동으로 눈덩이만큼 커지고 있습니다.

사실 건강한 시민의식만 정착된다면 우리같은 존재는 굳이 필요하지도 않습니다. 더 아름다운 포항시를 위해, 아직은 부족하지만 언젠가 그럴 날이 올 거라고 믿습니다.

/bareum90@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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