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규종<br /><br />경북대 교수·인문학부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

중학교 다닐 때가 아니었을까 한다. 바둑을 처음 접한 기억은. 흑백의 돌을 갈라 한 번씩 주고받기로 이뤄지는 반상(盤床)의 변화무쌍함을 경험한 아득함은 그 무렵이었다. 외숙의 손놀림은 경쾌했으며, 자신감 넘치는 콧소리는 흥겨웠다. 외숙에게 여섯 점으로 시작한 바둑은 치수를 좁혀 호선(互先)으로 전환하였다. 장구한 세월의 인내와 집념의 결과였다. 그 이후에도 이모부에게 무너졌던 기억이 여적 새롭다.

먹여치기와 축, 장문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것을 생각하면 분통이 하늘을 찌르고 남았을 터. 하지만 하늘은 내게 무던히도 끈질긴 호기심을 부여했다. 지고 또 져도 바둑을 향한 손끝의 맵시만은 흐트러짐이 없었으니까. 세월이 흐르고 흘러 강산이 몇 차례 바뀌고 난 후에 비로소 3급 정도의 기력을 갖추게 되었다. 이기고 지는 승부에 연연했다면 바둑은 오래전에 나와 작별했을 것이다.

인공지능 딥 블루가 체스의 1인자 카스파로프에게 승리한 것이 20년 전인 1997년 일이었다. 그 후 인공지능은 인류최고의 체스기사와 대결하여 불패의 기록을 남겨왔다. 남은 것은 인공지능과 인간의 바둑 대결이었다. 가로 세로 19줄의 바둑판이 가지는 무궁무진한 변화 가능성과 패의 활용이라는 변수를 들어 인공지능의 `넘사벽`으로 인식돼 온 바둑. 신화는 2016년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에서 허무하게 무너졌다.

1년 후 인류 최고수 커제가 알파고에게 일방적으로 무너지는 참사가 연출됐다. 이길 만큼만 남기고 적당하게 물러서고, 상대방의 무리수를 가차없이 응징하며, 두텁고 단단하게 판을 짜나가는 비상한 솜씨를 선보인 알파고. 딥 블루가 카스파로프에게 승리한 1997년에 태어난 커제 9단이 비통한 눈물로 마지막 판을 정리한 2017년 5월 27일 알파고는 산뜻하게 은퇴를 선언하고 퇴장했다.

중국에서 시작하여 반도(半島)에서 잡기(雜技)로 인식된 바둑. 일본에서 `기도(棋道)`로 승화되어, 지난 세기 말부터 한국과 중국에서 화사하게 피어난 바둑. 21세기 바둑은 중국이 스포츠로 규정함에 따라 `전문기사`라는 말 대신 `선수`라는 호칭이 일반화되고, 흑백의 덤도 중국이 선도하는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한때 세계최강을 자부하던 한국바둑은 대륙의 바람에 밀려 호시탐탐 중원의 재건을 꿈꾸는 지경이다.

알파고와 이세돌, 알파고와 커제의 반상대결을 보면서 21세기 4차 산업혁명의 파고(波高)를 새삼 반추한다. 미래학자들이 예견하는 20~30년 후의 세계가 어찌 전개될 것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작년 3월 이후에도 한국은 외부의 손길과 지시를 기다리는 형국이다. 세기의 대국이 다섯 번이나 전개됐음에도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 하는 해답의 모색을 외부에 의지하려는 자세를 비판한 국내 학자도 있었다.

돌이켜보건대 우리는 지난 200년 이상 지속된 과학기술혁명에서 언제나 구경꾼이었다. 그들이 선방을 치고 나가면 근근이 거리를 좁히는 현상이 반복되었다. 순조(1800~1834 재위) 때 유씨 부인이 남긴 `조침문`은 무엇을 말하는가. 200년 전 조선은 바늘 하나도 온전히 만들지 못했다는 얘기 아닌가?! 하기야 연암이 안의마을에 물레방아를 조선 최초로 설치한 시기가 1792년인데 무엇을 더 말하겠는가?!

그럼에도 한 가지만 짚는다. 21세기 세계는 나와 남할 것 없이 지식과 정보의 바다에서 각자의 능력을 선뵈는 시공간이다. 과거를 묻는 것도 중요하지만, 미래를 기획하고 담대하게 설계하는 작업은 한층 값지다. 젊고 유능하며 패기만만한 인재들의 강고한 도전과 의지가 절실한 시점이다. 알파고가 우리에게 남긴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