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규종<br /><br />경북대 교수·인문학부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

제19대 대통령 선거가 끝났다. 최박 스캔들, 이른바 비선실세 국정농단으로 촉발된 대통령 탄핵으로 성립된 대선이 끝난 것이다. 2016년 10월 29일 제1차 촛불집회가 대한민국의 명운을 바꾸는 신호탄이 되리라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청계광장에 켜진 2만의 촛불은 그 이후 12월 3일 제6차 촛불집회에서 전국적으로 230만 대중을 불러냈다. 지난 3월 4일 제20차로 막을 내린 촛불집회는 연인원 1천685만을 거리와 광장으로 소환했다.

그 많은 국민이 왜 한겨울 추위와 공포를 무릅쓰고 촛불을 들었을까?! 그것은 부패-무능-타락-패거리주의로 점철된 정권과 부역자들에 대한 분노였다. 광속의 시간대를 살아가는 21세기 지구촌에서 20세기 독재의 시대로 퇴행하는 것에 대한 저항이었다. 그것은 부패 기득권 세력의 악착같은 권력욕과 짬짜미에 대한 심판이었다. 촛불항쟁은 한숨과 탄식, 슬픔과 절망을 넘어서고자 하는 뜨거운 몸부림이었다.

한국사회에 만연한 부패-무능-타락-패거리주의를 청산하고 21세기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새 시대를 열어달라는 시민들의 열망이 촛불집회로 드러난 것이다. 촛불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강남과 강북, 서울과 지방, 취업자와 실업자, 부자와 가난뱅이, 스카이와 지잡대 같은 허다한 이분법이 암세포처럼 작동하는 헬조선을 혁파해달라는 외침이었다.

압축된 근대화와 산업화의 모순을 켜켜이 쌓아올린 부패 기득권 정치-관료집단의 행악질을 종결해 달라는 함성이 촛불이었다. 부패와 무능과 타락과 패거리주의는 비단 정치권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언론, 사학, 종교, 기업, 공무원 사회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으로 퍼져나간 거대한 암 덩어리다. 그것을 일컬어 `적폐(積弊)`라고 한다. 대통령 후보 문재인이 선거구호로 내걸었던 `적폐청산`은 거기서 발원한 것이다.

대통령 선거는 끝났고, 19대 대통령 문재인은 국민통합을 말한다. 옳은 말이고 좋은 말이며 바람직한 말이다. 하되 거기에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적폐청산을 실천하는 방향에서 통합을 말해야 한다. 구시대의 사회악과 암 덩어리와 거악이 산적해 있는데도 그것을 외면한 채 통합을 내세움은 실패를 예정할 따름이다. 적폐 당사자들이 온존하고 그 부역자들이 활개치는 마당에 통합은 조급한 격양가일 수밖에 없다.

그들이 진심으로 용서를 빌고 책임을 지고자 할 때만 국민통합은 가능하다. 나와 남편과 아내와 가족만을 위해서 사회와 국가와 민족을 팔아먹은 자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부패 기득권 세력이 망쳐놓은 강산을 되살리고, 청년들에게 미래 청사진을 제공하려면 적폐의 근원을 일소해야 한다. 우리는 그것이 언론개혁, 사학개혁, 재벌개혁, 종교개혁임을 알고 있다. 단 하나라도 온전히 척결하여 미래를 향한 디딤돌을 놓아야 한다.

`용서(容恕)`라는 말이 있다. 지은 죄나 잘못을 벌하지 않고 덮는다는 뜻이다. 여기서 한자말 `서`를 들여다보면 같을 여(如)와 마음 심(心)의 결합이 보인다. 나의 마음이 너의 마음과 같기에 용서할 수 있는 것이다. 가해자가 진심으로 사죄를 요청하고 무릎 꿇고 반성할 때 비로소 용서가 가능한 법이다. 일본군 위안부 협상에 우리가 동의하지 않는 까닭은 일본정부가 진정한 사죄와 반성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위안부협상은 무효인 것이다.

같은 이치로 우리는 1980년 광주항쟁 발포책임자 전두환을 용서할 수 없다. 그자는 한 번도 진심어린 사죄를 한 적 없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그에게 화해와 용서를 선물했지만, 그것은 너무나도 관대한 처사였다.

그리하여 나는 말한다. 진정한 국민통합과 미래기획은 명확한 적폐청산과 구체적인 실천이 담보될 때에만 가능하다고. 사사로운 인정과 포용은 훗날 견딜 수 없는 적폐의 `쓰나미`가 되어 우리 역사와 후손들에게 크나큰 멍에로 돌아올 것이다.

“적폐청산 없는 국민통합은 불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