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규종<br /><br />경북대 교수·인문학부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
정말 환하고 또 환한 봄날이다. 그런데 아직도 한겨울 냉기를 가슴에 안고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세월호 참사` 실종자와 사망자 가족들이다. 어느덧 3년 세월이 지나가고 있지만, 그이들의 생채기는 현재 진행형이다. 아마도 그분들은 원망스런 지상의 삶과 영원히 작별하는 그날까지 잊지 못할 것이다.

그들에게 봄날을 상기함은 사치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봄이 왔건만 봄이 온 것 같지 않다는 `춘래불사춘`은 그이들을 향한 말이기도 하다. 기원전 33년 한나라 원제 시절 흉노의 왕 선우 호한야(呼韓邪)에게 시집가야 했던 비운의 왕소군을 기린 당나라 시인 동방규. 그가 남긴 `소군원(昭君怨)`이 아직도 인구에 회자된다. “호지무화초 춘래불사춘 자연의대완 비시위요신.” (오랑캐 땅에 꽃과 풀이 없으니 봄이 와도 봄이 온 것 같지 않구나. 허리띠가 자연히 느슨해 진 것은 허리를 위함이 아니었나니.)

흉노의 거친 들판에서 중원의 고향을 그리는 여인의 심정이 보이는 듯하다. 하물며 사랑하는 아들딸과 부모형제를 잃은 `세월호` 유가족들의 심사야 어찌 필설로 다할 수 있겠는가?! 지난 70여 년 동안 숱한 한국인이 불귀(不歸)의 객이 되고 말았다. 식민지 조선을 경과한 연후 1945년부터 1948년까지 맞이한 해방공간과 정부수립 과정에서 발생한 제주 4·3사건과 여순사건을 생각해 보시라. 그 이후에 발생한 처참한 6·25사변은 또 어떤가.

독재자 이승만을 몰아낸 4·19혁명 시기에 산화(散華)한 영령도 200여 분에 달한다. 5·16 군사쿠데타와 군사독재자 박정희에게 목숨을 잃은 분들도 부지기수(不知其數)다. 더욱이 1980년 서울의 봄에 이은 광주 민중항쟁에서 민주주의 제단(祭壇)에 숱한 분들의 피가 뿌려졌다. 그리고 나서도 삼풍백화점 붕괴나 대구 지하철 방화참사 같은 재난이 뒤를 이었다. `세월호 참사`는 그런 대형사고의 결정판인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는 `세월호 참사`에서 실종된 국가와 정부를 여실히 목도했다. 그리하여 국민 모두가 절망하고 절규(絶叫)했다. “이것이 나라냐?!” 하는 통곡이 온 나라 방방곡곡에 울려 퍼졌다. 그럼에도 부패 무능 타락 패거리주의로 뭉친 일군(一群)의 정치 모리배(謀利輩)들과 권력자, 그에 부역한 자들은 `세월호` 유가족을 능멸하고 국민을 욕보이는 만행을 서슴지 않았다. 그분들을 위로한 이는 벽안(碧眼)의 이방인 프란체스코 교황이었다.

광화문 광장에서 유민 아빠를 안아주고 유가족들을 위로하는 교황의 모습은 이 나라 최고 권력자의 자세와 너무도 달랐다. 지구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을 가진 교황이 이 나라의 한 많고 설움 많은 필부필부(匹夫匹婦)들의 손을 잡아주고 다독이는 정경은 가슴 뭉클한 것이었다. 나는 거기서 권력의 아름다운 본질과 쓰임새를 보았다. 권력은 그리하라고 부여된 것이다. 무소불위(無所不爲)의 칼춤을 추라고 주어진 것이 아니다.

해마다 그날이 오면 나는 조기(弔旗)를 내건다. 그날 스러져간 영령들을 위로하자는 마음에서 시작한 일이다. 그리고 오래 생각한다. 국가와 권력과 정치 지도자의 존립근거를 하나하나 짚어보는 것이다. 이 나라 이 땅에서 살아가는 허다한 민초들의 고단한 삶과 미래를 조망한다. 여기서 나고 자라나는 우리 어린것들의 앞날이 어떨 것인지 조용히 가늠해보는 것이다. 그리고 나지막이 읊조린다. `아아, 저 빛나는 영혼들을 축복하소서!`

만물이 소생하고 약동하는 생장(生長)의 계절 봄에 부쩍 절망과 탄식으로 괴로운 분들을 하루라도 위로했으면 한다. 아무런 죄도 없이 창졸간(倉卒間)에 유명을 달리한 그분들의 넋을 기리자는 얘기다. 따사롭고 화사한 봄날에 우리와 함께 하지 못하는 분들을 기억하며 추모했으면 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다짐했으면 한다. 또 다른 `세월호 참사`는 두 번 다시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는 당위의 확인을 우리 모두의 염원으로 삼았으면 하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