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생각하다천양희 지음문학과지성사 펴냄·시집

원로 시인 천양희(75)가 여덟 번째 시집 `새벽에 생각하다`(문학과지성사)를 냈다.

1965년 등단한 시인은 절실한 언어로 특유의 서정을 노래하며 문단과 독자 모두에게 큰 사랑을 받아왔다. 올해로 등단 52년을 맞은 시인은 소월시문학상, 현대문학상, 대한민국문화예술상, 박두진문학상, 만해문학상 등 국내 주요 문학상을 수상하며 활발하게 활동해왔다. 현실적 절박성에서 비롯한 고통과 외로움이라는 화두를 절제된 시적 언어로 적어내며 고귀한 삶을 향한 간곡한 열망을 구체화해왔다. 일상어로 담담하게 적힌 시편들에는 시인의 부끄러움과 자책, 양보할 수 없는 자존심, 비애와 연민 등이 뒤섞인 감정의 소용돌이를 엿볼 수 있는 동시에 어떤 것도 지나치게 격발되지 않고 삶의 한 부분으로 수용되는 포용력과 균형감을 발견할 수 있다.

천양희 시는 중기로 접어들며 점차 삶과 사람과 자연을 잇는 깊은 통찰이 두드러지는 동시에, 시를 향한 굳은 의지가 강화되는 방향으로 진행됐다.

이번 시집에는 사물들이 서로 겯고틀며 함께 서는 자연의 이치를 발견·체화하며 이 동력으로 절망을 통과해 시로 나아가고자 노력해온 시인의 힘찬 여정을 담은 61편이 묶였다.

시집에서는 언어의 유희가 도드라진다. 빛과 어둠, 탁상시계와 탁상공론, 일이 꼬일 때마다 생각나는 새끼 꼬는 사람 등 말놀이가 넘쳐난다. 그러나 시적 모더니즘을 위한 유희가 아니라 삶에서 건져낸 통찰이 그런 말놀이를 가능하게 했다.

“전주에 간다는 것이

진주에 내렸다

독백을 한다는 것이

고백을 했다

너를 배반하는 건

바로 너다

너라는 정거장에 나를 부린다” - `저녁의 정거장`부분

천양희의 시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외형적 특징은 고전적 형식미다. 시어를 반복하고 중첩하거나 동음이의어 및 유사어를 써서 말맛을 높인다. 이 시집의 발문을 쓴 시인 김명인은 이러한 말놀음(pun)이 유희를 넘어서 “고통과 갈등을 여과시켜, 성찰의 순도를 높여가려는 시인의 의도가 비로소 구체화”된 결과임을 지적한다.

“웃음과 울음이 같은 音이란 걸 어둠과 빛이

다른 色이 아니란 걸 알고 난 뒤

내 音色이 달라졌다

빛이란 이따금 어둠을 지불해야 쐴 수 있다는 생각

웃음의 절정이 울음이란 걸 어둠의 맨 끝이

빛이란 걸 알고 난 뒤

내 독창이 달라졌다

 

▲ 천양희 시인
▲ 천양희 시인

웃음이란 이따금 울음을 지불해야 터질 수 있다는 생각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별처럼

나는 골똘해졌네” -`생각이 달라졌다`부분

초기 천양희 시에서 한층 더 도드라졌던 젊은 날의 비애가 점차 더 유연하고 포용력 있는 언어에 감싸여 삶의 깨달음으로 진화했다. 이는 막막한 허방을 허우적거리며 고통과 자책으로 웅크렸던 나날들을 견디며 뼈에 새기는 각성을 시에 덧붙여온 천양희 시인만이 다다를 수 있는 삶에 대한 이해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희수의 나이에 이르러 시인이 도달한 시적 경지는 그의 삶이 깊어진 정도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시인은 이 시집으로 “절망하고 부정하고 수긍하며 엎질러버리는 세월일지라도 피고 지는 꽃떨기로 난만한 봄은 어김없이 찾아”(김명인)온다는 말을 조심스럽고도 분명하게 전해온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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