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덩이 이야기
이대환·방민호·윤양길·이지명 등 공동 지음
예옥 펴냄·소설집

“북한 인권 문제는 진보, 보수와 상관없는 인륜, 인간의 문제입니다”

최근 출간된 `금덩이 이야기`(예옥) 는 탈북 문인과 국내 문인이 함께 북한 인권 문제를 소재로 한 단편소설이다.

남북한 작가들의 공동소설집은 지난 2015년 `국경을 넘는 그림자`에 이어 두 번째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후원으로 서울대 국문과 교수인 방민호 작가가 주도했다. 방 작가는 “북한에서 고난을 겪다 남쪽으로 와 소설의 형식으로 떠나온 땅의 기억을 증언하고 있는 귀한 작가들, 그리고 북의 일이 북의 일이 아니요 남의 일이자 세계 전체의 일임을 의식하고 있는 남쪽 태생의 작가들, 이 양쪽의 작가들이 하나 된 염원으로 이 책을 엮었다”고 소개했다. 또 그는 “인권이야말로 보수나 진보를 따지지 말아야 할 인간의 기본이다. 탈북작가층이 형성되는 상황에서 이 문제를 문학적으로 풀어나가는 게 문학인의 도리”라며 “이번 소설집은 첫 번째 책보다 리얼리티가 강화됐다”고 전했다.

소설집에는 도명학·윤양길·이지명·김정애·곽문안·설송아 등 탈북작가 6명이 단편소설을 1편씩 냈다. 이경자·박덕규·이대환·유영갑·이성아·정길연·방민호 등 그동안 남한 문단에서 북한 문제에 관심을 쏟아온 작가들의 작품을 합해 13편이 실렸다.

`북한 인권을 말하는 남북한 작가의 공동 소설집`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소설집에는 북한을 고향으로 둔 사람들의 삶과 꿈이 담겨 있고, 이들과 가까이 있는 남한 작가들의 이야기가 함께 실려 있다.

무엇보다 여전히 북한의 현실과 그로부터의 탈출, 남한 사회에서의 적응 등에 관해 해야 할 말들이 무수히 남아 있음을 여실하게 보여준다. 특히 탈북의 가장 큰 원인이었다고 할 수 있을 `배고픔`과 `가난`에 관해 여러 작품들이 그 끔찍한 실상을 잘 그려내고 있다.

이지명의 `금덩이 이야기`는 정치범관리소에서 만난 윤칠보 노인의 비극적인 사연을 드러낸 작품이다. 맏딸은 굶어 죽고, 작은 딸은 실종된 상황에서 사랑하는 아내마저 집에 홀로 남겨둔 채 관리소로 들어온 윤칠보는 그곳에서 영수를 만나 자신의 집에 금덩이가 묻혀 있다고 꼭 나가서 그것을 확인해달라고 말한다. 노인은 죽고 영수는 풀려나 약속대로 노인의 집을 찾는데, 그곳에서 자신과 인연이 닿았던 은혜가 노인의 딸이었음을, 노인이 말한 금덩이는 노인의 아내를 가리키는 것임을 비극적으로 깨닫는다. 은혜, 노인의 아내까지 모두가 가난으로 죽는 소설의 마지막 장면은 일말의 희망마저 발견할 수 없는 북한 사회의 단면을 투박하지만 강렬하게 드러낸다.

김정애의 `밥`도 마찬가지다. 제목에서 드러나듯 남한에 정착해 원 없이 “흰쌀밥”을 먹는 `지금`은 향이에게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이다. 그러나 아버지가 여전히 북한에 남아 있고, 엄마와 둘만 남한으로 내려와 있는 상황은 늘 마음의 짐이 된다. 향이 엄마가 남편과 어렵사리 전화를 연결해 탈출을 종용하면서도 결코 북으로는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은 `밥`의 문제가 다른 어떤 것보다도 절실하고 갈급함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 남북한 공동소설집 펴낸 탈북작가들. 왼쪽부터 도명학·김정애·이지명. <br /><br />/연합뉴스
▲ 남북한 공동소설집 펴낸 탈북작가들. 왼쪽부터 도명학·김정애·이지명. /연합뉴스

윤양길의 `어떤 여인의 자화상`은 불구가 돼버린 남자의 곁을 끝까지 지키는 `나`의 이야기를 다룬다. 불구자와의 결혼을 반대하는 부모, 희생과 인내로 점철된 결혼 생활 등은 익숙한 서사이지만 그 과정에서 그들이 겪어야 했던 북한 사회의 어떤 실상들과 끝내 속내를 드러내지 않았지만 깊이 서로를 이해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몇몇 장면들은 인상적이다. 남편의 자살과 `나`의 어쩔 수 없던 `다른` 임신, 그리고 그 아이를 “당신처럼 나라를 위해 한 몸 바칠 영웅으로” 만들겠다는 마지막 다짐의 장면은 지독한 아이러니로 읽힌다.

이대환의 `중량초과`는 남한과 북한 사회가 어떻게 같고 어떻게 다른지 평양의 민족작가대회로부터 시작해 남한의 노동 파업 전야로 이어지는 이야기를 통해 보여준다. 법정에서의 증언 혹은 검찰에서의 신문처럼 서술되는 목소리는 남한과 북한 사회가 모두 `중량초과`의 상태임을 씁쓸하게 드러낸다. 작가에 따르면 누군가는 계속 부족하고 다른 누군가는 늘 넘쳐흐르는 비균형의 사회는 남북한이 동일하다는 것이다. 다소 희극적인 서술로 이뤄진 이 작품은 그래서 오히려 더 현실의 비극성이 부각된다.

설송아의 `제대군인`은 군 제대 후 극도로 생활이 어려워진 북한사회를 마주한 철혁이 절도 행각을 통해 자기 운명을 다시 개척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제 북한 사회는 돈이면 뭐든 할 수 있는 사회로 뒤바껴버렸고 자신에게 다가올 파국을 예측하지 못한 채 철혁은 점점 더 대담해진다. 급기야 군수물자를 실어 나르는 열차에서 물품을 빼내다가 군인들에게 적발돼 총을 맞고 철혁은 사망한다. 이 소설에서 인상적인 것은 부유한 화순을 만나고 난 후 철혁에게 찾아오는 변화인데 북한 사회 역시 자본의 격차가 엄연하고 그것이 매우 심각한 상황임을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경자의 `나도 모른다`, 방민호의 `시간여행`, 박덕규의 `조선족 소녀`는 북한 사회와 탈북자들을 바라보는 남한의 시선을 각각 보여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세 작품은 모두 문학이라는 예술로 이들을 이해하고 자신들의 신념을 지키며 올바른 가치를 실천할 수 있는지를 진지하게 묻고 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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