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민호<br /><br />서울대 교수·국문학과
▲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학과

겨울을 견디는 심정은 나를 나 자신도 모르게 이천 년 전 험한 세상을 헤쳐 나갔던 한 인물에게로 나아가게 한다.

그는 신약성경에 다수의 편지가 실려 있는 독특하고도 위대한 인물로서 소아시아 지역의 디아스포라 유대인으로 출생했고 유대교의 율법에 충실한 사람으로 생애의 전반부를 보냈다.

귄터 보른캄이라는 한 철저한 학자가 그의 생애와 사상에 관한 저술을 펴냈고 나는 그것을 아주 오래 전에 사서 부분부분 읽었던 적이 있다.

그때 왜 이 책을 사야겠다고 생각했는지 알 수 없다. 이 책은 옵셋 인쇄로 되어 있을 만큼 출판된 지 오래되었고 번역 문체 역시 몹시 문어적이어서 젊은 사람이 읽기에는 적합하지 않을 정도였다.

그를 사도로 지칭하며 철학적 논의를 개진한 사람의 책을 읽다가 그 안에서 귄터 보른캄의 저술을 새겨들을 만하다는 평을 접한 것이 다시 한 번 이 책을 찾아보게 했다. 하지만 행방이 묘연했다. 어느 서가에 꽂혀 있는지 표지가 온통 하얀 이 책이 아쉬운 나머지 나는 다시 헌책방에 들어가 구해 보기로 했다.

며칠만에 책이 왔다. 14쇄 짜리였다. 나는 이 책을 이번에는 정독을 해볼 생각으로 처음부터 밑줄을 그으며 읽기 시작한다. 무엇보다 내게 관심사는 그의 생애 과정이다. 사람의 생각, 사상을 알려면 먼저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야 한다는 게 문학작품 연구를 해온 내 원칙 가운데 하나다.

그는 처음에 바리새인적인 율법주의에 철저한 사람이었지만 나중에 신의 은총을 얻어 회심했다 하며 그때로부터 삶이 다할 때까지 자신이 입은 은혜를 땅 끝까지 펼치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의 신앙은 아는 자, 배운 자, 가진 자의 것이 아니요, 믿는 자, 가난한 자, 정통에서 소외된 자들의 것이었다. 유대인만의 독점적인 신앙이 아니요, 이방인들, 그리스인들, 다른 모든 변방의 민족들을 위한 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입은 신의 은혜를 이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전해야 하는 빚을 짊어진 사람으로 자신을 이해했고 이 빚을 갚기 위해 자신의 생애를 바쳤다. 숭고한 사명을 빚으로 받아들인 사람의 내면 세계를 나는 보른캄의 저술을 통해서 다시 한 번 엿볼 수 있었다.

아, 무서운 것은 그가 자신의 `소식`을 세상에 전파하고자 할 때 그에게는 아무런 광명의 약속도, 보상도, 기약도 주어지지 않았었다는 것이다. 그는 천막을 만드는 피혁공이었고, 언변이 아주 뛰어난 사람도 아니었다. 로마시민의 신분을 가지기는 했지만 이 제국의 지배질서에 복속되어 기묘한 우월적 지위를 누리는 유대인들, 그리고 이들을 보증하고 이들의 요구를 받아들임으로써 지배를 관철하고자 했던 제국의 관헌들에게 지속적인 박해를 당해야 했고 끝내 그들의 손에 희생되었다.

그러나 그는 지극히 위험한 상태에서 기약 없는 사업을 벌여나가면서도 포기하거나 돌아서지 않았다. 그의 말은 화려하거나 교묘하지 않았지만 광신도들, 유대주의자들, 주술사들, 철학자들의 세치 혀로는 얻을 수 없는 정직함을 담고 있었고, 무엇보다 그의 서신은 그가 말로써 다하지 못한 진실을 충당하고 율법에 얽매이지 않는 믿음의 정당성을 입증하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세상이 어둡고 혼란스럽고 그러한 상태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었음에도 자신의 신념을 지켜 도시에서 도시로 나아가며 가는 곳마다 자신의 힘과 기술로 노동하는 일을 그치지 않고 자신의 믿음을 굳세게 전파해 나갔다는 사람. 그가 바울이다.

이것이 무엇이냐, 하고 나는 생각해 본다. 그의 삶의 과정이 지금 이 혼란스러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의미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고 나는 생각해 본다.

어둠이 있어 빛의 사람은 이렇듯 오래 빛날 수 있는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