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민호<br /><br />서울대 교수·국문학과
▲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학과

설이 가깝게 다가오자 나는 또 대전에 가고 싶어졌다.

지난 2년 동안 대전에 무척 자주 다녔다. 장편소설을 쓰기 위해서라고 했지만, 그보다 고향이나 다름없는 장소를 향한 말 못 할 그리움 때문이라고 말해야 마땅할 것이다. 하이데거는 현대인은 모두 고향을 상실한 자들이라고 말했고 그 존재의 근원을 향한 그리움과 현재의 자신에 대한 우려, 근심을 말했었다.

대전을 굳이 무궁화호를 타고 두 시간을 쓰며 내려가면서 나는 가슴 속에서 피어오르는 안도감을 맛보았다. 장편소설 한 권을 넘겨가며 밑줄까지 그으며 읽고 생각할 수 있는 작은 공간이 기차 안에 생겨나 있었던 것이다. 비도, 눈도 감당할 수 없게 내리는 법은 한번도 없었던 대전. 이곳에도 오랜만에 눈이 제법 내렸다.

눈이라면 폭설이면 더 좋겠지만 그정도 눈은 아니다. 그래도 근래 맛보지 못한 한파가 닥친 참이라 내린 눈이 녹지 않고 쌓여 있는 거리. 대전역에서 옛날 충남도청으로 향한 직선도로 중앙로의 오후는 유난히 쓸쓸하다. 나는 오늘 아직 한 끼도 먹지 않았다. 마음이 고달픈 나머지 문득 시장기를 느끼고 칼국수라도 몇 젓가락 뜰까 하고 중앙시장 시장통 먹자 골목으로 접어들었는데 마침 칼국수도 한다고 쓴 집이 눈에 뜨인다. 들어가보니, 그런데 겨울에는 칼국수를 하지 않는단다. 대신 주방쪽에 갓 삶아낸 소고기를 가리키며 해장국이 좋다고, 한우만 써서 지금 막 삶았으니 한번 먹어보라고 권한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소고기 건져 놓은 것을 보니 그것도 괜찮을 것 같다. 요즘 들어 육식을 현저히 줄이고 가급적 배를 채우지 않으려 해왔건만 오늘만은 예외로 삼아보기로 한다.

나는 밥때를 넘겨 손님없는 식당의 한쪽 벽 옆 탁자에 자리를 잡는다. 품이 넉넉해 보이는 주인 아주머니가 나를 보고, 그 자리가 전직 대통령이 왔을 때 앉은 자리라고 했다. 선거 때 여든여덟 명이 일층, 이층을 다 채웠었는데 그때 바로 이 자리에서 식사를 했다는 것이다. 고개를 끄덕거려 드리고 밥을 기다리며 장편소설 상권의 뒷 페이지들을 마저 넘기는데 텔레비전에서 실황 중계를 한다. 특검에 여러 사람들이 소환되는 상황을 현장 중계로 실어나르는 것이다.

세 사람이 한꺼번에 한 호송차에 실려 소환된다는데, 막상 버스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보니 여성이 세 사람에 남성이 하나다. 나쁘지 않은 사회적 위치를 가지고 있던 여성들, 그리고 권력 체계의 정점을 차지했던 노인이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 카메라 세례를 받으며 특검 빌딩 엘리베이터 안으로 사라졌다. 주인 아주머니가 난로가에 앉아 있다 탄식을 했다. 사람 앞 일은 모른다더니 저럴 줄 알았겠느냐는 것이다. 나는 동의를 구하는 주인 아주머니를 향해 의무감에서 고개를 끄덕여 드리고 마침 가져온 해장국을 떠먹기 시작했다. 과연 해장국은 큰 선거에 나간 사람들이 일부러 찾을 정도로 맛이 좋았다. 하지만 입맛은 쓰다. 올 겨울은 그다지 춥지 않았는데도 더 음산하고 우울하다. 설이 바싹 다가왔는데도 거리는 들썩이지 않고 명랑해지기는커녕 더욱 우울해진다. 그래도 나를 쳐다보는 주인 아주머니의 시선을 의식해서 나는 해장국 한 그릇을 거의 다 비워냈다. 덕분에 속은 많이 따뜻해졌다. 중앙로 한가운데를 대전천이 가로지른다. 여기 있는 다리를 목척교라 한다. 나는 이 다리 위에서 얕게 흐르는 냇물을 바라보며 생각하기를 즐긴다.

다리 위에 오랜만에 찾아온 한파를 품은 찬바람이 빠른 물살처럼 지나친다. 나는 마치 고향에 돌아와도 마음에 제 고향 지니지 못한 사람처럼 쓸쓸한 감정에 사로잡혀 있었다. 어렸을 때는 모든 것이 따뜻하고 정다웠던 것 같다. 부모, 형제가 있으니까. 하지만 나이가 들고 내가 속한 세상에 눈뜨자 고향은 사라지고 아주 멀리, 아득히 먼 곳에나 있을지 알 수 없고, 싸우고 미워하고 잡아뜯는 아비규환 속에 처박힌 것 같다. 고향이 그립다. 마음 둘 수 있을 고향 같은 세상에 가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