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현욱<br /><br />시인
▲ 김현욱 시인

2016년 포항시 원-북은 김경집 작가의 `엄마 인문학`(2015)이다. 인문학 열풍에 편승해 뒷북치는 감이 없지 않다. 저자는 `엄마 인문학` 강연을 묶어 펴낸 것이라고 밝혔다. 강연에서 입말로 했던 내용을 지면으로 옮겼다고 했는데, 사전에 아무런 주제나 원고 없이 강연했을 리 만무하다. `엄마 인문학`은 김경집 작가가 앞서 펴낸 책과 중복되는 부분이 많다. 포항시 원-북 선정위원들이 전작들까지 검토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아무래도 시류를 잘 읽은 편집자와 출판사의 기획도서로 보인다. 그렇다고 김경집 작가가 들려주는 인문학 이야기가 결코 시시한 것은 아니다.

작가는 서문에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그리고 가장 위대한 힘을 지닌 엄마들이여, 혁명합시다!”라고 썼다. 그리고 뒤에 “이제 엄마들의 본색을 드러내세요. 혁명해야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섹시한 혁명을!”이라고 했다. 작가가 엄마들에게 성적인 매력을 발산하라는 뜻으로 `섹시한 혁명` 운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활력의 삶, 주체적인 삶을 주문한 것이리라. 비단, 책을 읽고 세상을 읽고 사람과 삶을 읽는 것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엄마인가? 그렇지 않다. 엄마도 관계 속에서 엄마로 거듭난다.

관계란 여러 대상이 서로 연결되어 얽혀 있다는 뜻이다. 관계 속에는 늘 맥락이 존재한다. 관계가 연결이라면 맥락은 연관이다. 작가는 `맥락 읽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흥부전`을 예로 든다.

“흥부가 박을 타는데 네 개의 박이 등장합니다. 첫 번째 박에서 풀뿌리, 산삼 등이 나옵니다. 두 번째 박에서는 책이 나와요. 세 번째 박을 탔더니 금은보화와 산해진미가 나옵니다. 이제 네 번째 박이 하나 남았습니다. 그때 흥부 처가 남편을 말립니다. 하지만 흥부는 영악해 무엇이 나올지 알고 있었어요. 결국 마지막 박까지 탔더니 아름다운 여인이 나옵니다. 이것들은 모두 당시 조선 후기 사람들이 생각했던 행복의 순서를 나타냅니다. 무병장수, 입신양명, 부귀영화, 그리고 쾌락입니다. 여기서 사람들은 흥부가 대박이 나서 부자가 됐다는 사실만 기억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있어 돈이 가장 중요한 행복의 조건이 되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텍스트에 갇히지 말고 그 안에 내재한 관계를 들여다봐야 한다고 작가는 거듭 강조한다. 사회 현상도 마찬가지다. 최근 나홀로 1인 가구가 4인 가구 수를 넘어섰다는 언론보도가 있었다. 2015년 말을 기준으로 총 520만 가구가 나홀로 1인 가구로 밝혀졌다.

이때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그리고 시대의 맥락을 읽어야 한다. 아무래도 혼자서는 어렵다. 가장 좋은 방법은 “함께 책을 읽고 세상을 읽고 사람과 삶을 읽는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다.

내가 아픈 원인은 사회 구조에 있는데 자기 치유만을 강조하는 `셀프 힐링`의 위험성을 지적한 작가의 예리함은 여전히 유효하다. 아파트마다 마을마다 학교마다 사회적 연대, 공동체, 동아리가 주도적으로 만들어지고 활성화되어야 한다. 공공도서관과 작은도서관의 가장 중요한 역할도 그것이다. 그때 비로소 우리 사회는 `소셜 힐링`으로 나갈 수 있다. 혁명 하면 떠오르는 분이 있다. 고 장일순 선생이다. 외국의 한 기자가 장일순 선생을 찾아와 물었다. “혁명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장일순 선생이 말했다. “혁명이란 따뜻하게 보듬어 안는 것이라오.” 기자가 놀랍다는 듯이 물었다. “그런 혁명도 다 있습니까?” “혁명은 새로운 삶과 변화가 전제되어야 하지 않겠소? 새로운 삶이란 폭력으로 상대를 없애는 게 아니고, 닭이 병아리를 까내듯이 자신의 마음을 다 바쳐 하는 노력 속에서 비롯되는 것이잖아요? 새로운 삶은 보듬어 안는 정성이 없이는 안되지요.”

완연한 가을이다. `엄마 인문학`을 읽고 엄마든 아빠든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