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병철<br /><br />시인
▲ 이병철 시인

할머니는 앞을 전혀 못 보는 시각 장애인이시다. 보청기 없이는 아예 못 듣고, 있어도 청력이 극히 제한된 청각 장애인이기도 하다. 나 아닌 다른 곳을 보며 내 이름을 부를 때도 그렇지만, 세 해 전 태어난 외증손자의 얼굴을 볼 수 없으시다는 것이 가장 안타깝다. 얼마나 보고 싶을까. 주름진 손으로 아기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이목구비와 살집, 성정을 짐작하는 목소리에 스민 체념과 원한이 참 아프다.

나는 할머니가 단 한번만이나마 외증손자를, 나이든 손자의 얼굴을, 세상의 꽃과 구름을, 전국노래자랑 송해 선생의 건재한 모습을 볼 수 있기를 늘 기도한다. 내가 가진 것 중 뭐라도 바꿀만한 게 있다면 할머니에게 빛을 선물하고 싶다. 그러나 내가 드릴 수 있는 것은 고작 어쩌다 한번 집에 들를 때 사 가는 족발이나 롤케이크 정도다. 십여년 전만 해도 추석날 장충체육관에 모시고 가 마당놀이 구경도 시켜드렸는데, 이젠 그럴 수 없다. 그래서 보는 것 대신 듣는 걸 챙겨드린다. 얼마 전 카세트라디오를 새 걸로 바꿔드렸다. 고속도로 휴게소 들를 때면 판소리나 엿장수 메들리 테이프를 몇 개씩 집어 든다.

할머니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사과 모양으로 생긴 탁상 알람시계다. 내가 6년 전에 사드린 것인데, 꼭지 부분을 누르면 “아홉 시” 하고 현재 시간을 음성으로 알려준다. 암흑 속에서 시계의 힘을 빌려, 할머니가 스스로 알 수 있는 세상의 유일한 정보는 오직 시간뿐이다. 시계가 없으면 굉장히 불안해하신다. 명절마다 아버지가 귀농해 있는 당진 집으로 모시고 갈 때도 차에 탄 몇 시간 내내 사과시계를 두 손으로 꼭 감싸 쥐고 계신다. 시계를 품에 안고 꾸벅꾸벅 졸다가 무서운 꿈을 꿨는지 화들짝 깨어 사과꼭지를 누르는 모습을 룸미러로 볼 때면 마음이 젖는다.

얼마 전 그 시계가 고장 났다. 할머니의 답답함을 잘 알기에 새로 구입하려는데, 같은 제품은 모두 품절이거나 영어 음성 안내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더 비싸고 좋아 보이는 제품을 살펴봤더니 정각마다 천장에 빔을 쏴 시간을 알리고, “이십 시 이십 분. 삼십 도” 이렇게 현재 시간과 온도까지를 음성 안내해준단다. 빔 기능은 물론이고, 24시간 기준 안내나 온도 알림 기능은 할머니에게 정말 필요 없다. 청력마저 나쁜 할머니에게는 그저 “여덟 시” 단순하게 시간만 알려주면 그만이다. 6년간 쓰던 사과시계도 온도까지 같이 안내해줘 할머니가 늘 어려워했다. 그나마 그게 제일 나았는데, 다시 구하기가 쉽지 않다.

이번 추석에 할머니는 결국 시계 없이 먼 길을 다녀오셨다. 장애인 연금 받은 걸 봉투에 넣어 내게 내미셨다. 아무리 짙은 암흑이라도 할머니의 사랑은 늘 환한 봄볕이다. 나를 업어 키운 할머니 등이 참 많이 작아졌는데, 여전히 내가 업힌다. 할머니에게 너무나 큰 것인 장애인 연금이 내겐 적은 용돈일 뿐이고, 내게 아무것도 아닌 사과시계가 할머니에겐 가장 소중한 물건이라는 사실이 슬프다. 나는 아직도 시계를 구하지 못했다. 할머니 등에서 말 배우던 어린 나처럼, 큰 소리로 또박또박 “두 시!” 외치는 시계가 부디 있었으면 좋겠다.

제품 만드는 분들이 음성 안내 시계가 누구에게 절실한 물건인지 헤아려주셨으면 좋겠다. 시각장애인이나 고령자들이 주로 사용할 텐데, 더 쉽게 만들어주길 부탁드린다. 영어 음성과 온도 안내처럼 은행, 관공서 서류도 불필요하게 복잡하다. 나도 헷갈리는 용어가 많은데 장애인이나 고령자들은 오죽할까. 정치, 경제, 법률, 언론에도 쓸데없이 현학적이고 난해한 수사가 많다. 정보가 과잉돼 정작 중요한 게 안 보인다. 일부러 말을 어렵게 꼬아 국민을 혼란에 빠뜨린다는 의심도 든다. 국민안전처와 기상청, 국방부와 외교부도 혐의가 짙다. 온갖 브리핑, 보도자료, 의전 등 자기들만 근사한 디지털시계가 되려는 것 같다. 디지털이 무슨 소용인가. 기상청 슈퍼컴퓨터도 자주 틀린다. 그냥 사과시계만큼만 하자. 때에 맞춰 사실대로 알기 쉽게 말하는 것, 국민에겐 큰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