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정헌<br /><br />(주)스틸앤스틸 대표
▲ 서정헌 (주)스틸앤스틸 대표

철강산업 구조조정이 본격화 되면 가장 큰 타격을 받을 곳 중 하나가 철강도시 포항일 것이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철강사들이 겪을 어려움의 몇 배 이상의 타격이 포항 지역경제를 덮칠 것이다. 철강위기로 인한 포항지역의 위기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산업과 지역을 연결하는 교집합적 접근이 필요하다. 산업으로서 철강과 지역으로서 포항을 동시에 접근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철강산업의 위험에 대해서는 포항지역에서도 오래 전부터 얘기되고 있었다. 1990년대 필자가 포항에 있는 산업과학기술연구원(RIST)에 근무할 때 일이다. 당시 박태준 포스코 회장은 포스코 다각화 방안을 연구하라고 지시한 바 있었다. 철강이 영원하기 어렵기 때문에 철강의 사양화가 포스코나 포항 지역경제의 사양화로 연결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영원히 철강에만 의존하기 어렵기 때문에 철강 외 다른 사업으로 다각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당시 포스코 경영성과가 너무 좋았기 때문에 철강만으로 영원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박태준 회장의 다각화 주장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지금 돌이켜 보면 박태준 회장은 당시 1990년대 일본 철강산업의 어려움과 일본 철강사의 다각화 노력을 보면서 우리도 미리 미래를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박태준 회장이 제시한 다각화는 아직도 우리에게 진행중인 과제다. 그동안 포항지역에서는 다양한 철강 외 산업으로 다각화가 추진되어 왔지만 실제로 철강을 대체할만한 다각화의 사례는 찾아보기 힘든다. 요원한 것처럼 생각되었던 철강위기는 벌써 우리 눈앞에 다가왔는데 이에 대비하는 다각화는 아직 그 때 그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다. 과연 그 이유는 무엇일까? 필자의 생각으로는 우리에게 절박함이 적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말이나 글로는 다각화를 얘기할 수 있지만 현실에서는 다각화를 추진할 힘이 없었던 것이다. 다각화는 타이밍이 가장 중요하다. 그런데 과연 포항 지역경제에서 다각화를 위해 남은 시간은 얼마나 될까? 필자는 이미 그 타이밍을 놓친 것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마저 있다.

철강 외 다른 산업으로 산업간 다각화가 어려워지면서 최근 포항에서는 철강산업 내에서 2차, 3차 가공산업으로 다각화라는 새로운 방향이 제시되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생각은 철강이 수요산업으로 더 가까이 다가가서 철강산업 내에서 다각화를 하겠다는 것이다. 포항이 철강생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철강과 철강수요산업 사이에 있는 다양한 부품가공산업으로 영역을 확장하여 더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하겠다는 의도다. 아주 기술집약적인 부품가공산업의 경우는 국내 수요산업 뿐만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서도 공략이 가능할 수 있기 때문에 도약의 기회는 더 많다고 볼 수 있다. 중국과 같이 아주 경쟁적인 시장구조에서는 일찍부터 철강이 철강재 가공산업으로 진출하여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큰 흐름을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 철강산업이 지금까지 부품가공산업으로 다각화 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오랜 세월 한국 철강시장을 지배해 온 공급자 중심의 시장구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시장구조의 문제는 국가의 산업정책 차원에서 풀어야 할 문제지 포항 지역경제가 혼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최근 포항이 자동차용 부품산업을 유치하기 위해 울산과 도로를 개통하고 있지만 현대차그룹은 자동차를 만드는데 현대제철의 철강재만 쓰는 수직계열화를 강화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포항에 공단을 만들어도 부품산업을 육성하는 데는 많은 한계가 있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