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재휘 논설위원
▲ 안재휘 논설위원

한가위 목전이다. 해마다 `명절`은 민심이 소용돌이치는 소통의 큰 장인 만큼 숱한 담론들이 오가는 계기가 된다. 명절이 다가오면 정당과 정치인들은 긴장한다. 설과 추석은 경향(京鄕)의 여론이 한꺼번에 뒤섞이는 소용돌이가 일어난다. 각 정당과 정치인들은 이 시기를 어떻게 선용할 것인가 고심한다. 정치권에서는 각자 유리한 정보가 확산되도록 하기 위해 바삐 움직이기도 한다.

친족 친지들끼리 나누는 명절 여론보다 전염성이 강한 경우는 없다. 내 가족, 벗님들의 이야기는 그 누구의 말보다도 신뢰의 무게를 더하기 때문이다. 2016년 한가위에는 민초들 사이에 과연 어떤 정치담론들이 오갈 것인가. 지난 총선에서 나타난 민심에 대한 갖가지 분석이 나올 것이다. 현안인 북핵문제나, 사드배치에 대한 견해들도 오갈 것이다.

되돌아보면, 우리 명절의 정치담론의 흔적에는 지역감정의 노예로 점철된 모순과 비이성적 진영론의 참담한 흔적들이 즐비하다. 모순투성이 지역감정의 엉터리 공식에 대입된 선동에 무참히 적대감을 확대재생산해온 구조도 있었다. 옳고 그름을 가려낼 균형 감각을 마비시키는 온갖 궤변들이 신념의 탈을 쓰고 민심을 어지럽힌 역사도 깊다.

소위 `보수`라는 탈을 쓴 외눈박이들이 영남 민심을 현혹했고, `진보`라는 가면을 쓴 외눈박이들이 호남 민심을 왜곡했다. 무구한 민초들에게 색안경을 강요해온 그 세월이 결코 짧지 않았으므로, 오늘날 대한민국은 아직도 그 폐해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널리 확산된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그릇된 습성은 난해하기 짝이 없다.

국민들의 올 추석밥상 화두에는 필경 차기 대통령선거와 관련된 화제들이 수두룩 올라올 것이다. 대선이 아직 일 년하고도 석 달이나 남았으니 멀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각 정당들이 `대선후보를 빨리 결정한 정당이 이겼다`는 지난 대선 통계에 솔깃한 참이라, 각 정당의 대선후보 결정은 어쩌면 7~8개월밖에 남지 않은 상황으로 해석하는 것이 맞을지도 모른다.

예상컨대, 추석연휴가 지나면 아마도 대선주자들의 활동이 본격화될 것 같다. 이슈를 선점하기 위한 어젠다 전쟁이 벌어질 것이고, 이미지 각인을 위한 화려한 쇼맨십도 만개할 것이다. 한가위 민심의 연장선상에서 우리 국민들은 과연 어떤 인재들이 대통령감인지를 치열하게 가늠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이번 한가위 추석밥상 여론은 매우 중요하다.

지난 4·13총선에서 우리 유권자들은 고질적 지역감정의 늪을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선명하게 보여주었다. 우선 이번 추석밥상 담론에서 소아병적인 배타적 지역주의를 과감하게 탈피할 것을 주문한다. 색안경을 벗고 맑은 눈으로 정치이야기를, 정치인이야기를 펼쳐주기를 소망한다. 정책을 보고, 인물 됨됨이를 견주는 건강한 토론이 전개되기를 희망한다.

대안이 있는 생산적인 비판이 소통되기를 기대한다. 우리 정치논쟁의 치명적인 맹점은 주장과 비난만 있고, 정책대안이 수반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여당은 설득을 생략하고, 야당은 비난만 쏟아낸다. 여당은 맹종을 강요하고, 야당은 험구만 일삼는다. 왕성한 논리적 번민이 선행되지 않은 토론은 늘 위험하다는 진실을 너무 쉽게 망각한다.

한가위 보름달은 사람을 가리지 않고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빛을 내린다. 조물주가 우리에게 눈과 귀를 왜 두 개씩 주었는지, 입은 왜 한 개만 주었는지를 기억해야 한다. 다른 이야기를 달리 듣고 존중할 수 있어야 진정한 선진국이 된다. 두 눈과 두 귀로 보고 들은 이야기를 중심으로 말은 최대한 절제하라는 그 뜻을 실천해야 좋은 세상이 된다.

민족 최대의 세시풍속, 한가위를 맞아 오랜만에 만난 가족과 친지들의 대화가 확연히 달라지길 소망한다. `외눈박이` 정치논리로부터, 그 찌질한 편견으로부터 벗어나 건강한 담론이 방방곡곡 넘쳐나길 소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