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개화<br /><br />단국대 교수·교양학부
▲ 배개화 단국대 교수·교양학부

며칠 전 신문을 보다보니 텅 비어있는 국회의 복도 사진이 실려 있었다. 예전과 달리 국회의원에게 온 선물이 적다는 설명과 함께였다. 이런 일이 생긴 것은 9월 28일부터 시행되는 `김영란 법` 때문이다. 매년 명절이 되면, 언론을 통해서 국회위원이나 고위 공무원 혹은 기업체 간부들의 집 앞에 선물들이 쌓여있는 것이 보도되곤 했었다. 이에 비하면 며칠 전 국회의 사진은 김영란 법이 만든 색다른 풍경이다.

김영란 법의 공식 명칭은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로 `청탁금지법`이라고도 부른다. 이 법은 본인 혹은 제3자를 통하여 직무를 수행하는 공직자 등에게 부정한 청탁을 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그리고 `공직자 또는 공적 업무 종사자`에는 국가 및 지방 공무원, 공직유관단체, 공공기관의 장과 그 임직원, 각급 학교의 장과 교직원 및 학교 법인의 임직원, 언론사의 대표자와 그 임직원 등이다.

이처럼 `청탁금지법`이 시행되는 것은 그 만큼 우리나라에 부정청탁이 만연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최근에 연일 언론을 통해 보도되고 있는 김형준 서울검창청 부장검사의 뇌물수수 의혹은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김형준 검사는 고등학교 친구로부터 여러 가지 금전적인 편의를 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언론에서는 김형준 검사에게 돈을 준 사람을 스폰서라고 부르고 있다. 불우이웃 돕기 하는 것도 아니고 제공자가 아무런 대가를 기대하지 않고 돈을 줬을 리 없으니, 받은 사람이 아무리 순수한 돈이다, 그냥 빌린 것이다는 말로는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대학교에 있다 보면, 이런 스폰서 검사나 명절에 선물을 받았느니 하는 이야기는 모두 남의 나라 이야기 같다. 간혹 대학원에서 석사나 박사 학위 심사를 하고 `거마비`(소위 교통비)로 몇 백씩 준다는 언론보도가 있는데, 필자는 이런 일을 경험해 본 적이 없다.

학생이 학교에 논문 심사비로 낸 것(10만원 내외)을 통장으로 입금 받는 외에, 다른 돈을 학생으로부터 직접 받는 일은 없다. 필자는 스승의 날이라고 학생에게 꽃을 받은 적도 별로 없다. 또한 필자는 나이가 어리거나 지위가 낮은 사람에게는 절대로 밥을 얻어먹지 않는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

하지만, 필자도 김영란 법의 규정에서 아주 예외는 아니다. 간혹 수업을 하다보면, 4학년 학생이 취업이 되어서 출석을 할 수 없는데, 최소 학점을 달라고 필자에게 요청하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필자뿐만 아니라 다른 교수들도 경험하는 일이다. 예전 같으면 이런 학생에게 학점을 주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지만, 9월 28일 이후부터는 이것을 들어주면 `김영란 법`을 어기는 것이 된다.

이것은 본인이나 제3자를 통한 부정한 청탁을 들어주는 경우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필자가 재직 중인 학교에서는 전체 출석 일수의 3분의 1을 결석하면 F학점을 주게 되어 있다. 이처럼 교수가 학생에게 F학점을 주게 되면, 학생은 과목을 이수하지 않은 것이 된다.

졸업을 위해서는 반드시 이수해야만 하는 학점이 있기 때문에, 출석 날짜가 부족해서 F학점을 받게 되면, 학생은 졸업장을 받을 수 없게 된다. 이런 이유로 학교에서는 졸업 전 취업자에게 학점을 어떻게 줄 것인가에 대한 방침을 마련하는 문제를 논의 중이다.

이렇게 김영란 법은 이미 시행 전부터 우리 사회의 여러 가지 관행들에 영향을 주고 있다. 청탁과 이해 당사자들 간의 부정한 금전 거래는 우리 사회가 합리적으로 운영되는 데 방해가 되고 있는 것임에 틀림없다. 물론 추석과 같은 명절에 오가는 선물은 순수한 마음의 표현일 수 있다. 하지만 “오이 밭에서는 신발 끈을 묶지 말고, 배나무 아래서는 갓끈을 고쳐 매지 마라”는 옛말처럼 오해의 소지가 있는 행동은 아예 하지 않는 것이 서로를 위해서 그리고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