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사익고용노동부 포항지청장
공무원이 돼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지 벌써 40년이 다 돼 간다. 대학 졸업하고, 취업준비에 또 몇 년…. 지금의 젊은 세대들은 감히 상상이나 할까? 한때는 대기업에 취업해서 어깨에 힘주고 다니던 잘난 친구들이 너무 부러웠다. 언젠가 사정이 바뀌었다. 대기업에 다니던 친구들은 일찌감치 보따리를 싸서 집으로 갔고, IMF가 터지고 경제가 내리막길을 내달려도 끄떡없는 나를 진심으로 부러워했고, 나는 비로소 자부심을 느꼈다.

노태우 후보의 6·29 선언 후 10여 년간 근로조건 향상에 대한 산업현장의 욕구가 봇물처럼 터져 나와도 나라 살림은 계속 나아지고, 열심히 노력하면 공무원이든 대기업이든 취업할 곳도 많았다. 기회는 상수고 본인의 노력은 변수였다. 지금은 기회는 변수고 노력은 상수다. 교문을 나서는 학생들이나 부양할 가족이 있는 기성세대에게나 취업은 지상과제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슬금슬금 시작된 청년들의 취업난이 해결될 기미를 보이기는 고사하고 더욱 악화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통계청의 발표에 따르면 올해 7월 전국의 청년실업률은 9.2%에 달한다. 일용직과 임시직까지 포함하면 아마 훨씬 높을 것이다.

미래세대의 일자리를 키우기 위해 현 정부는 노동개혁을 최우선 과제로 추진하고 있다. 벌써 2년이나 됐다. 한 때는 노사정이 대타협으로 힘을 보탠 적도 있었다. 늦은 감이 있었지만 그렇게 떠들썩하게 추진했던 노동개혁은 어디쯤 자리하고 있을까? 노동개혁의 주무 부서에서 일하는 나는 제 역할을 다했는지 의심하면서 그래도 건강한 노동 현장을 위해 우리 모두가 함께 해결했으면 하는 게 있다.

우선 연공급 중심의 경직성 임금체계를 직무성과 중심의 유연한 임금체계로 개선했으면 좋겠다. 지금은 많이 바뀌었지만, 공무원의 급여는 연륜이 쌓일수록 높아진다. 그가 하는 직무나 성과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게으른 공무원이라면 그저 세월이나 기다릴 것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연공급은 생산성과 무관하게 임금이 오르기 때문에 중·장년 근로자들은 조기퇴직의 압박을 받고 기업은 청년들을 정규직으로 채용하기를 꺼리고 비정규직 또는 외주 하도급에 의존하게 돼 고용구조가 더 악화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러한 임금체계는 직무급 등을 통해 인력운영의 탄력성을 높이고 환경 변화에 신속히 대응함으로써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바뀌어야 한다.

채용에서부터 퇴직까지 인사관리 전반에 공정인사를 확산해 나가는 것도 중요하다.

기업들이 학력이나 스펙보다는 직무능력 중심으로 채용하도록 하고, 공정한 평가와 그에 따른 급여·승진 등 보상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미래를 위한 가장 중요한 투자인 교육훈련은 지속적으로 강화돼야 한다. 그 결과 열심히 일한 근로자는 합당한 보상을 받고, 저성과자는 재기의 기회를 부여받는 한편, 기업은 경쟁력을 확보함으로써 노사 모두 함께 사는 길을 만들어가야 한다.

노동시장이 가야 할 방향은 분명하다. 공정하고 투명하고, 예측 가능해야 한다. 성과는 제대로 보상받아야 한다. 그 결과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여성과 남성의 격차는 해소되고 그 구분도 의미를 잃게 될 것이다. 근로시간을 단축하고, 근로 취약계층을 보호하는 임시방편도 중요하지만 이런 것들을 통해서 저성장-저고용이라는 우리 경제가 안고 있는 악순환의 고리를 빨리 끊도록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그럴 수 있다면 정말 좋겠지만 노동개혁은 경제주체 모두가 흔쾌히 동의할 수 있는 쉬운 과제가 아니다. 따라서 그만큼 참고 이겨내야 할 고통이 따를 수밖에 없다. 그것을 극복하는 것은 노와 사를 포함해 우리 기성세대가 먼저 감당해야 할 몫이다.

나는 조용히 떠날 날을 기다린다. 내가 떠난 자리는 취업에 목말랐던 누군가가 채울 것이고, 또 몇 사람은 승진의 기쁨을 맛볼 것이다. 해서 오래 정들었던 보금자리를 떠나지만 마음은 평온하다. 다른 자리에서라도 우리 노동시장이 훌륭하게 변신해 국민 모두가 일자리 걱정 없이 살아가는 `일취월장`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다면 무얼 더 바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