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개화<br /><br />단국대 교수·교양학부
▲ 배개화 단국대 교수·교양학부

요즘 영화 `덕혜옹주`가 누적 관객이 500만을 넘어서면서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런 관심에는 `덕혜옹주`가 팩션, 즉 역사적 사실이나 인물에 대한 기록을 바탕으로 작가가 상상력을 더해 만든 창작물(faction, 즉 fact와 fiction의 합성어)이라는 것도 있다. 영화가 극적인 흥미를 높이기 위해서 역사를 왜곡했다는 것이 언론에서 회자되는 비판의 주된 내용이다. 그렇다면 이 영화의 어떤 부분이 역사를 왜곡한 것으로 비판받고 있으며, 이러한 논란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무엇일까?

필자는 2008년이 될 때까지 덕혜옹주의 존재자체를 알지 못했다. 혼마 야스코(本馬恭子)의 `도쿠케이 히메(德惠姬)`가 `대한제국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한국에 소개된 이후에야, 필자는 그녀의 존재를 인지하게 됐다. 덕혜옹주의 삶에 대한 짧은 요약 기사를 읽으면서, 필자는 그녀의 비극적 삶과 식민지 기간 동안 조선인의 수난사가 겹쳐지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동시에 이 이야기의 흥행의 가능성 역시 발견했다.

이후, 권비영 작가가 이것을 소설 `덕혜옹주`로 출판해서 베스트셀러가 됐고, 영화는 이것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잘 알려진 것처럼 덕혜옹주는 대한제국 황제 고종과 귀인 양씨(貴人 梁氏) 사이에서 옹주로 태어난 뒤, 13살 되던 해에 일본으로 건너가서 일본식 교육을 받았고, 조현병(정신분열증)을 앓았다. 이후 그녀는 대마도주 소 다케유키와 혼인했지만, 딸이 자살을 했고 그 자신은 이혼을 한 후 정신병원에 수감됐다. 이런 부분은 소설과 영화의 사실에 해당한다.

하지만 영화가 덕혜옹주를 독립투사로 묘사한 점은 증거가 없는 허구이다. 영화에서 덕혜옹주는 일본의 군수공장에 징용으로 끌려온 조선 노동자들 앞에서 연설을 하고, 일제에 저항하는 조선 유학생 모임에 참석하며, 조선독립단체의 도움으로 영친왕(고종의 아들)과 함께 중국 상하이(上海)로 망명하려고 하는 점 등은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 덕혜옹주의 역사 왜곡을 비판하는 쪽의 주장은 덕혜옹주가 독립투사였던 적이 없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왜 영화는 덕혜옹주를 독립투사로 묘사한 것일까? 이에 대해서 원작자는 “역사를 왜곡해서는 안 되겠지만 영화적 재미를 위해 어쩔 수 없이 가미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덕혜옹주가 자신의 역사적 역할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노동자들 앞에서 연설하는 장면 등을 가공해서 넣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덕혜옹주의 삶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와 감동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 덕혜옹주의 삶에 좀 더 집중해서 묘사하면 더 좋지 않았겠냐는 비평가들의 비평에 필자는 충분히 동의한다. 그래서 필자는 왜 작가는 덕혜옹주를 영웅으로 만들려고 한 것일까? 왜 그녀에게 도덕적 월계관을 굳이 씌우려고 한 것일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이러한 허구화에는 한국의 대중들이 공유하고 있는 정치적 무의식이 작용하고 있다. 즉, 여기에는 독립 운동을 한 사람을 윤리적인 사람으로 평가하고, 그에 대한 호감도가 상승하는 대중들의 무의식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이 영화는 친일 행위를 부정적으로 보고, 반일을 긍정적으로 보는 `정치적 무의식`은 어떤 영화를 볼지를 선택하는 대중들의 기호에 영향을 미칠 정도라는 점을 잘 보여준다.

사실, 팩션의 역사 왜곡에 대해서 필자는 좀 관대한 편이다. 그것은 이런 팩션을 통해서 잘 몰랐던 역사적 사실이나 인물에 대해서 대중들이 알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덕혜옹주` 역시 영화화 되면서 그동안 대중들이 잘 알지 못했던 한국 근대사의 한 에피소드들을 대중적으로 인지할 수 있게 되었다. 동시에 이 영화는 흥미 있는 개인사가 대중들의 `정치적 무의식`과 결합하면서 대 흥행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