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현욱<br /><br />시인
▲ 김현욱 시인

살면서 이렇게 무더웠던 적이 또 있었나 싶다. 이번 여름은 손에 꼽히는 혹서기였다. 다들 누진세가 무서웠는지 영화관, 커피숍, 대형마트에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그에 비하면 도서관은 한산한 편이다. 집 근처에 삼겹살 맛집으로 소문난 곳이 있는데 간판에 이런 문구가 보였다. “우리 가게에 한 번도 안 온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온 사람은 없다!”

도서관은 어떨까? “도서관은 오는 사람만 온다!” 도서관을 꾸준히 다니다 보면 알게 된다. 찾는 사람이 찾는다. 오는 사람만 온다. 엉뚱한 소리 같겠지만, 도서관에서 삼겹살 한 번 구워 먹었으면 좋겠다. 한 번도 안 온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온 사람은 없는 맛집(?) 도서관이 될 수 있을지도.

이런 무더위에는 도서관이나 교실에서 책을 읽거나 강의를 듣는 게 최고의 피서다. 6살 딸아이에게 도움이 될까 싶어 그림책 강의를 신청했다. 강사가 물었다. “그림책이란 무엇일까요?” 이런저런 대답이 나왔다. 나는 속으로 `우리 딸 읽어주는 재미있는 책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다 `어른이 읽어도 아름답고 감동적인 책입니다.`라고 덧붙였다.

강사는 멋진 말을 쏟아냈다. `글과 그림의 행복한 결혼`이라느니, `문학과 미술이라는 서로 다른 예술 형식이 독특하게 결합된 형태`라느니, `그림 없이 글로만 존재할 수 없는 책, 그림이 없다면 이야기의 의미가 불분명해지는 책`이라느니, `외견상으로는 글과 그림의 합성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글로도 그림으로도 보기 어려운 제3의 텍스트, 아이코노 텍스트`라느니…. 계속 듣고 있자니, 그동안 딸아이에게 읽어줬던 재미있고, 아름답고, 감동적인, 그 그림책들을 얘기하는 게 맞는지 의아했다.

그러다 뜬금없이, `삼겹살과 그림책의 공통점`이 궁금했다. 저 강사도 이런 식으로 포문을 열었더라면 더 재미있지 않았을까. 아무튼, 삼겹살과 그림책의 공통점은? 좀 억지스럽더라도 들어보시라. ①재미가 있다. 삼겹살은 먹는 재미, 그림책은 읽는 재미가 있다. ②살코기와 비계가 있다. 삼겹살은 비계가 적당히 있어야 맛있다. 그림책도 글과 그림이 어울려야 재미있다. ③껍질이 두껍다. 삼겹살의 껍질은 그림책의 하드커버처럼 두껍다. 돼지 껍질은 콜라겐이 풍부하고 그림책 표지는 상상력이 풍부하다. ④국산과 수입품이 있다. 삼겹살은 국산이, 그림책은 수입품이 대세다. 물론 국산 그림책이 점점 인기다. ⑤만만하다. 국민 고기 삼겹살처럼 그림책도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다. ⑥같이 먹는다. 삼겹살도 그림책도 함께 먹어야, 같이 읽어야 즐겁다.

이쯤 했는데, 강사가 그림책 읽어 줄 때 주의할 점을 말했다. 귀가 솔깃했다. 그림책을 읽어주는 방법은 다양하다. 삼겹살을 먹는 방법이 다양하듯이. 내 아이가 당신 아이와 다르듯이. 내가 당신과 다르듯이. 다들 식성이 다르듯이. 그림책의 글을 읽을 때는 동화 구연하듯 읽지 말고 자연스럽게 읽으라고 했다. 특히, 글자를 짚어가며 읽지 말라고 했다. 가끔 딸아이가 재미있게 실감 나게 읽어달라고 할 때가 있는데 그때는 어쭙잖은 동화 구연을 한다. 할머니가 됐다가 쓰레기통이 됐다가 곰이 되기도 한다. 요즘 끝말잇기에 재미를 붙인 딸아이가 이 글자는 뭐고 저 글자는 뭐냐고 묻는다. 그럴 땐 손가락으로 그림책을 짚어가며 읽어준다.

돌이켜보면, 다 그때그때 다르다. 예전에 `웃찾사`라는 개그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컬투 콤비의 유행어처럼 모든 일은 그때그때 다르다. 그게 그림책 읽어주는 일뿐이랴. 자녀교육도 살아가는 일도 모두 그때그때 다르다.

다만,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는 교사의 열정이나 자녀에게 책 읽는 기쁨을 알려주기 위해 오늘도 도서관을 들락날락하며 가방에 5권씩, 10권씩을 그림책을 빌려 가는 부모의 사랑 같은 것들이 아닐까?

그건 그렇고, 이 더위 가시면, 딸아이와 삼겹살이나 구워 먹어야겠다. 삼겹살과 그림책의 공통점 찾기라는 희한한 놀이나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