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장대 정상에서 본 무지개. 오를 때만 해도 안개 자욱하더니 순식간에 날이 개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개의 흔적처럼 무지개가 떴다. 별똥별을 보았을 때처럼 소원을 빌었다.
▲ 문장대 정상에서 본 무지개. 오를 때만 해도 안개 자욱하더니 순식간에 날이 개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개의 흔적처럼 무지개가 떴다. 별똥별을 보았을 때처럼 소원을 빌었다.

날씨가 더워 어디 가는 것도 힘든 이런 날, 추억 한 토막 꺼내어 놓는 일도 나쁘진 않을 듯하다. 지금 같아선 말도 안 되는 소리겠지만, 나는 초등학교에 입학을 해서도 한글을 읽지 못했다. 한글을 읽게 된 건 초등학교 2학년 가을쯤이었던 것 같다. 한글을 모른다는 건 “아, 한글을 몰랐구나!”의 차원으로 끝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학교는 말의 세계가 아니라 문자의 세계니까. 학교는 “닥쳐”라고 말하기보다 “정숙” 따위의 글자를 써놓길 좋아하는 곳이다. 그러니 2년 동안 글자를 몰랐다는 건 초등학교 2년 동안을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는 한글을 모른다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동네에서 누구보다 글을 읽을 줄 아는 아이로 통했다. 형들이 보는 책을 들고 곧잘 친구들에게 책을 읽어줬다, 아니 읽었다고 믿어왔다. 하지만 그건 책읽기가 아니라 그림 읽기 혹은 이야기 지어내기에 불과했다. 저번에 봤던 그림이긴 했지만, 저번에 했던 이야기를 기억할 리 만무했으니 다른 이야기를 지어내야 했다. 그러니 삽화나 그림이 없는 책은 도대체 어떻게 읽는 것일까, 또는 삽화를 보는 사람마다 다른 이야기를 할 텐데 어떻게 사람들은 한 책에 있는 내용을 같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일까, 와 같은 의문이 드는 것은 당연했다.

책읽기가 그림을 보고 이야기를 지어내는 것이 아니라 글자를 읽는 것이라는 것, 이 당연한 사실을 알게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내가 글을 그렇게까지 늦게 깨우친 것은 오히려 자만과 오만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친구들 사이에서 글을 잘 읽는 아이로 정평이 나있던 내가 한글을 모르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죽기보다 싫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한글을 모른다는 사실이 들통 난 건 입학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다. 담임이라는 양반이 식전 댓바람부터 괘도(掛圖, 이런 말까지 기억하고 있다니, 나도 참 `대다나다`)를 펴더니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글자를 따라 읽게 했다. (얼마나 억울하면 내가 그 구절을 지금도 아주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하늘

파란 하늘

파란 하늘에

우리 태극기

겨우 이 정도 수준의 글을 읽으라니, 나는 콧방귀를 뀌었다. 괘도에는 파란 하늘, 태극기, 날아가는 새 그런 것들이 그려져 있었고, 나는 누구보다 잘 읽을 자신이 있었다. 글자가 아니라 그림을 말이다. 난 `창조한글`의 선구자였으니까. 대머리였던 담임은, 그 반짝이든 양반은, 우리를 한 줄로 세워놓고 한 명씩 한 명씩 읽어보게 했다. 읽은 아이는 자리로 돌아가 쉬게 했지만, 그렇지 못한 아이는 줄 뒤에 섰다가 다시 읽게 했다. 이렇게 쉽고 게다가 짧기까지 한 글을 감히 `한글도사`인 내게 시키다니…. 난 수치스러웠지만, 겨우 국민학교 1학년이었으니까 시키는 대로 하긴 했다. 나는 누구보다 의기양양했고, 누구보다 용감하고 씩씩하게 읽었다.

그런데도 이 `담탱이`는 읽을 때마다 틀렸다고 오리발을 디밀었다. 나는 그 양반이 나의 `창조한글`을 시샘해서 괜히 그러는 줄로만 알았다. 다른 아이들이 읽으면 잘 했다고 칭찬하는데 유독 나에게만 다시 읽어 보라고 했다. 나는 분노에 치를 떨었지만, 몇 살 자시지도 않은 양반이 얼마나 씌우고, 우기고, 억지를 부렸으면 머리가 발랑 까졌을까, 라고 그를 측은하게 여기며 분노를 삼켰다. 나는 창조한글 따위 집어치우고 친구들이 읽는 것을 외워서 그대로 따라했지만, 내 자리로 돌아갈 수 없었다. 선생님은 아마 한자한자 차례대로 짚었던 것이 아니라 무작위로 글자를 짚어 내가 한글을 아는지 모르는지를 시험했던 것 같다.

 

▲ 공강일<br /><br />서울대 강사
▲ 공강일 서울대 강사

결국 나는 한글을 못 읽는 아이로 낙인 찍혔다. 절망은 높고 견고했다. 그렇게 태극기와 세종대왕을 싫어하는 아이가 되었다. 나는 오래도록 문맹의 바다를 유영해야 했고, 친구들이 다 집으로 가는데 나만 남아 나머지 공부를 해야 했다. 그런데 어느 날 거짓말처럼 한글을 알게 되었다. 정말 거짓말처럼 말이다. 글 읽는 것도 글 쓰는 것도 좋아져 국문학과에 가긴 했지만, 사는 건 녹록치 않다. 언젠가 베냐민은 글자를 배운 아이는 다시 글자를 배울 수 없다고 말했다. 너무도 당연한 말이지만 이 말은 깊고 막막하다. 나는 글자를 다시 배울 수도 없고, 글자를 배웠던 그때로 돌아갈 수도 없다. 그래서 그림을 보고 글을 읽던 어린 날이 더욱 그리운지도 모르겠다.

※이 사업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