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4년 개화파가 갑신정변을 성공시켰으나 3일천하로 끝나고 김옥균은 일본에 망명하지만 찬밥신세로 정처 없이 떠돈다. 그가 명줄을 그나마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바둑 덕분이었다. 그는 조선의 당대 최고수였고 일본에도 바둑애호가들이 많았으니, 그들과 `바둑친구`가 되어서 그럭저럭 식객 노릇을 할 수 있었다. 그는 `이기는 바둑`에 연연하지 않았다. 바둑은 수담(手談)이라 그는 한판의 바둑 속에서 상대의 성격·취향·소질 등을 알아냈고 그에 맞춰서 근소한 차이로 `이겼다 졌다`를 조절하며 상대의 호감을 이끌어냈다.

맹자는 인간에게는 4단(四端) 7정(七情)이라는 착한 본성이 있다고 했다. 이성(理性)속에는 `남의 불행을 보고 가슴 아파하는 측은지심·자신의 잘못을 부끄러워하고 남의 잘못을 미워하는 수오지심·예의를 차릴 줄 아는 사양지심·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지혜인 시비지심`이 있고, 감성(感性)속에는 희·노·애·락·애·오·욕이라는 7가지의 정서가 있는데, 이것은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특성이어서 기계나 짐승에게는 결단코 없다.

한 노인이 마른 논에 물을 주는데 너무나 비효율적이다. 항아리에 개울물을 담아 논에 가져다 붓는 일을 반복하는 것이다. 한 행인이 지나가면서 “물 푸는 도구를 쓰면 금방 일이 끝날 텐데요” 충고를 하자 노인은 “그것은 자연의 이치에 맞지 않은 짓이요” 한다. 행인은 떠나면서 “고생깨나 하시겠군” 하고 노인은 그 뒤꼭지에 대고 “기계 좋아하다가는 종래 재앙을 부를 것”이라 한다. `장자`에 나오는 이야기로 무위자연사상을 설파한 것인데 오늘날의 상황을 잘 예견했다고 할만하다.

이세돌 9단이 인공지능 알파고와의 대국에서 졌다 해서 낙담할 필요가 없다. 기계가 인간을 지배할 시대가 왔다고 절망할 필요도 없다.

바둑은 `인간 끼리의 일`이다. 오히려 `인간의 영역`을 찾는 계기로 삼을 일이다. 예술적 감동·남녀 애정·혈육의 정·친구간의 우정·스승에 대한 존경심·가정의 행복감 등은 오직 인간만 누릴 수 있는 영역이다.

/서동훈(칼럼니스트)

    서동훈(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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