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영숙 수필가
아침 청소를 하고 할 일없이 빈둥거리는데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경주 남산의 진달래가 우리 보고 싶어 울다가 눈이 벌겋게 되었으니 진달래보러 등산 가잔다. 구름 한 점 없는 용장골 하늘은 갓 세수한 말간 얼굴이다. 올봄은 흐리거나 비가 온 날이 많아 칙칙했는데 봄의 끝자락에 와서야 맑고 고운 얼굴로 벙긋이 웃는다.

용장골로 올라가는 남산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모두 새로운 맛이다. 계절은 제 이름에 어울리게 산을 꾸며 놓고 우리를 부른다.

봄꽃의 화사함, 여름의 녹음, 가을의 풍성함, 어느 화가가 있어 이렇게 찬란하고 아름다운 계절을 채색할 수 있으랴. 순백의 겨울은 가슴까지 비우게 하며 나를 품어 안는다.

자연의 위대하고 웅장함에 감사할 뿐이다. 눈이 짓무르도록 우리를 기다린다던 진달래꽃은 흔적도 없고 연초록 잎사귀들이 햇살에 반짝인다.

고이산 중턱쯤에 이르렀다. 갑자기 더워진 탓인지, 방에만 뒹구느라 약해진 체력 때문인지 숨이 코끝에서 펄렁인다. 둔해진 몸을 감당하느라 힘이든 발이 미끄러지기를 수도 없이 한다. 용을 쓰면서 이 나무 저나무 잡아당기느라 손바닥에는 이미 진달래가 다시 피었다. 이젠 몸 하나 감당하기도 벅차다. 무엇엔가에 의지하지 않고는 산에 오를 자신이 없다. 여기저기 널브러진 막대기 중 듬직한 것을 골라 지팡이로 삼았다. 지팡이를 짚으니 산에 오르기가 훨씬 편하다.

사실 지팡이는 본인이 만들지 않는다고 한다. 지팡이는 어르신에 대한 존경의 뜻으로 선물로 받는 것이 일반적이다. 우리 조상들은 나이에 따른 지팡이를 선물로 받았다. 50세가 되면 가장이라고 하여 자식들이 만들어 주었고, 60세가 되면 향장이라 하여 동네에서 만들어 주었다. 70세가 되면 나라의 경사이기에 국장이라 하여 나리에서 만들어 주었고, 80이 되면 아주 큰 경사여서 임금이 지팡이를 하사하고 조장이라 하였다. 내 나이 60이 넘었으니 향장을 받음직 하지만 만들어 줄 이 없으니 스스로 지팡이를 만들어 짚었다.

산을 오르는 일이 훨씬 수월해졌다. 이제 여기 저기 연초록 잎이 눈에 들어왔다. 뾰족하게 얼굴을 내민 앉은뱅이 꽃이 금방이라도 필 듯 뱅긋이 웃는다. 미끄러워 밉기만 하던 소나무 마른 잎에서 솔 향이 올라왔다. 헉헉대던 숨결이 잦아들었다. 긴 휘파람을 날렸다. 그 소리에 놀란 듯 솔방울이 뚝 떨어졌다.

굴러가는 솔방울을 보다가 아침에 남편과 다툰 일이 미안해졌다. 양치를 하려고 치약을 짜는데 치약이 없다. 남편에게 앞 베란다 벽장에 있는 치약을 좀 가져다 달라고 했다. 남편이 치약을 두루룩 굴렸다. 그냥 넘어가도 될 일에 짜증을 내었다. 주거니 받거니 말이 길어지다 보니 언성이 높아지고 눈물 한 자락을 짜 내고 말았다.

`남편이 지팡이 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용량보다 많은 약을 먹어 축 처진 나를 업고 병원 응급실로 달려가던 남편이었고, 예순 아홉에 저 세상으로 떠난 엄마를 못 잊어하는 아픈 가슴을 다독여 주는 이도 남편이었다. 딸아이를 낳고 둘째를 잃어버렸을 때 내 눈물을 닦아 주는 이도 남편이었다. 인생 굽이굽이 어렵고 힘든 일 같이 헤쳐나간 지팡이. 고위산에 오르는 지팡이를 내가 만들듯 인생 지팡이도 내가 다듬고 아껴야 하는데 작은 일에 토라지고 화내고 상처 주었다.

지팡이 덕분에 쉽게 산꼭대기에 올랐다. 얼굴을 쓰다듬어 주는 바람이 싱그럽다. 점심을 먹으면서도 지팡이를 챙겼다. 보물을 간수하듯 옆에 둔 지팡이를 보았다. 내 육중한 체구를 감당하느라 날렵하던 끝이 무디어졌다.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고맙기도 했다. 까탈스런 내 성깔을 고이 참아주느라 내 남편의 신경도 저렇게 무디어졌겠지. 오늘 저녁에는 남편이 좋아하는 불고기에 맥주 한 컵과 웃음 한 쟁반 차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