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인에게는 `시간이 돈`이라 관청의 민원처리가 빠를수록 좋고 공무원은 질질 끌수록 재미를 더 본다. 그래서 관련 서류를 빨리 돌려달라고 `급행료`를 내고 매끈하게 해달라고 `기름칠`을 한다. 이것이 `민간과 공무원의 전통적 관계`다. 늑장을 부리는 것은 위법·불법·무법이 아니었다. “신중을 기했다”하면 된다. 행정행위에는 재량(載量)이란 것이 있다. 모든 것을 다 법률에 규정할 수 없으니 공무원이 알아서 결정·처리하는 권한이다. 허가를 해줄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이 `공무원의 마음`에 달린 것이 많다. 바로 이것이 `재미`를 가져다 준다.

인사혁신처가 공무원의 자유재량권을 크게 제한할 작정이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안 하거나 고의로 늑장을 부리는`소극행정`을 하면 최고 파면이나 해임까지 갈 수 있는 징계령 시행규칙 개정안을 최근 입법예고했다.

공무원은 자유재량권을 가지는 반면`직무태만`은 징계사유가 되는데 이 직무태만에 대한 처벌 수위를 크게 높인 것이다. 자유재량권을 남용해서 국민에게 피해를 줄 정도로 직무를 해태할 경우 파면을 시킬 수 있는데 파면은 퇴직금·연금이 삭감되고 향후 5년간 공직에 나갈 수 없고 지휘 책임자인 상관도 함께 문책된다. 또 가벼운 징계인 경고·주의 처분을 받아도 `1년간 해외연수나 포상` 대상에서 제외된다.

지난해 정부는 `소극행정 사례집`을 돌렸다. 그 속에 부작위(不作爲)나 소극행정의 종류가 구체적으로 나열돼 있는데 인허가 등 민원처리를 고의로 늦추거나 동료의 부정행위를 알고도 눈감아 줄 경우 등이 포함돼 있다.

우리나라는 공무원 임용시험 경쟁률이 엄청 높은데 앞으로 점점 인기가 줄어들 조짐이다. 공무원의 밥줄인 `규제`가 자꾸 없어지고 자유재량권이 제한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극행정`을 권장함으로써 선진국형 행정으로 발전하는 징검다리가 놓여졌다.

다만 규정만 있고 실천이 없는 `선언`차원에 머문다면 이 또한 `정부의 거짓말`이 되고 만다. 팔이 안으로 굽는 일부터 잡아야 한다.

/서동훈(칼럼니스트)

    서동훈(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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