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택동은 신(神)이 되고 싶었다. 집권 당시 붉은 표지를 입힌 그의 어록은 `성경`이었다. 인민들은 그의 어록을 깡그리 외웠고, 마치 신라 사람들이 작은 불상을 품에 품고 다녔던 것처럼 그의 책을 항상 손에 들고 다녔다.

지금 시진핑 주석이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한다. 최근 그는 3대 공영언론사(인민일보·신화통신·중앙TV)를 시찰하며 `군기`를 잡았다. `모택동 따라배우기`다.

모(毛)는 대장정 당시 “적과 싸워 이기려면 두 가지 군대가 필요하다. 하나는 총을 든 군대요, 하나는 필봉을 든 문화군대”라며, “당의 영도에 따라 인민을 단결시키며, 여론전(선동 선전)을 수행하는 전위 역할이 언론의 사명”이라 했다.

시(習)주석도 “모든 매체는 당의 의지를 체현하고 당 중앙의 권위를 수호해야 한다”고 훈시했다. 그는 관영매체뿐 아니라 도시보(都市報·민간상업언론)와 SNS까지 손아귀에 틀어쥐고 `문화군대 사령관`이 돼간다. 그동안 싹틔웠던 언론자유는 된서리를 맞는 중이다.

한 신문 기자가 “곧 경제위기가 온다. 주식을 팔아야 할 때”란 기사를 썼고 2주후 중국 주가가 폭락했다. 그러나 그 기자는 “허위사실 유포죄”로 2만3천달러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 경제성장률을 6.9%로 발표했지만, 뉴욕타임스가 정확한 데이터를 근거로 산출했더니 4.3%였다. 북경대의 한 교수는 “중국 중앙은행과 통계당국은 늘 데이터를 고치고, 넣었다 뺐다 한다” 했다. 중국 언론이 말하는 통계는 믿을 것이 못된다는 뜻이다.

남방도시보(南方都市報)가 `사진을 잘못 실은 죄`로 편집인이 해임되고 몇 사람이 행정처분을 당했다. 시 주석이 언론사를 시찰하는 사진 옆에 나란히 중국의 개혁 개방의 원로 `위안겅`의 유골을 바다에 뿌리는 사진을 실었던 것. “이같은 편집태도는 중국의 개혁과 언론자유는 끝났다란 뜻”이라고 해석한 것이다. 뿐만 아니고 최근에는 “시집가려면 시삼촌 같은 남자를 만나요”라는 시 주석 우상화 노래까지 나돈다. 중국은 모택동 암흑시대로 되돌아 가는가.

/서동훈(칼럼니스트)

    서동훈(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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