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대환<br /><br />작가
▲ 이대환 작가

올해 1월 하순, 라오스. 나는 처음으로 한국 입법부 수장의 존재감을 직접 경험했다. 비엔티안에서 루앙프라방 가는 항공기에는 여행객이 많았다. 만석 같았다. 그런데 이륙시간을 한참 넘겼으나 움직이지 않았다. 안내방송도 없었다. 유엔의 북한인권 결의안에 반대하는 나라가 라오스지. 이러고는 애써 속을 다스리는데 문득 `정의화 국회의장이 탑승하지 않아서`라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다시 십여 분이 더 흘렀다. 한국인 남성들이 웅성거렸다. “비행기 시간에 자기 일정을 맞춰야지, 자기 일정에 비행기 시간을 맞춰야 하나.” 맞는 항의였다. 그래도 나는 얼핏 이런 생각을 했다. 국가의전서열 2위 아니신가.

항공기가 착륙했다. 승객들의 짜증을 불러일으킨 장본인은 안 보이고 그의 수행원들이 많은 가방들을 챙기고 있었다. 한국이었으면 벌써 SNS를 뜨겁게 달구고 있을 한국인들이 그들에게 몇 마디 꾸지람을 했다.

이튿날 아침, 나는 친구들과 루앙프라방의 유명한 볼거리로 알려진 스님들의 탁발 행렬을 보러 나갔다. 저만치 앞에 정장을 빼입은 남성 하나가 서 있었다. 뉴스에서나 보았던 정의화 국회의장이었다. 우리는 어제 겪은 짜증을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올해 9월 어느 날, 그가 내년 4월 총선에 출마한다고 했다. 나의 첫 반응은 여느 시민처럼 국회의장까지 지냈으면 후배에게 물려줘야 올바른 처신이라는 것이었다. 국회의장은 무소속이니 내년 3월 새누리당에 재입당하여 경선에 나설 것이다, 2017년 대선을 내다보고 있다는 기사도 보았다. 어쩌랴, 인생의 로망이라는데. 나는 이러고 덮었다.

지난주에 국회의장의 국가적 존재감이 부각했다. 대통령과 여당 의원들이 요청한`법안들 직권상정`을 격렬히 거부한 때문이었다. 다만 그날 정 의장은 선거구 획정안에 대해선 “입법 비상사태가 발생하는 만큼 결단할 수밖에 없다”며 “결국 현행으로 갈 수밖에 없지 않나 싶다”고 밝혔다. `결국 현행`이라니? 부산에는 김무성의 영도구와 유기준의 서구에다 정의화의 중·동구를 쪼개 붙여야 한다더니 이걸 없애겠다는 뜻도 담지 않았는가?

그 발언에 뒤이어 그가 다시 여야 협상을 주선했고, 그의 지역구도 인구 하한선에서 탈출하는 묘수가 나올 전망이라니, 그날 내 판단은 좀 빗나갈지 모른다. 하지만 판단의 자유는 있다.

직권상정 거부도 그렇다. 합법 여부의 문제라 했지만, 경제상황에 대한 판단의 차이가 뚜렷하다. 대통령은 비상한 위기라 보고, 국회의장은 아니라 본다. 그의 존재감을 불려준 언쟁에서 정치적 계산을 싹 빼버리면 바로 판단의 격차가 불거지는 것이다.

`YS의 키즈`에 꼽히는 그는 그분 장례식장에서`YS의 IMF사태 책임`을 경감해야 한다는 자못 효성스러운 발언을 했다. 6·25전쟁 후 최대 국난이라 불렸던 그때가 요즘 반면교사로 불려나온다.

`구조개혁 성공`이란 단서가 압정처럼 박힌 국가신용등급 상승마저 그때와 흡사하다고 한다. 현재 국가경제 상황에 대해 국회의장이 대통령보다 더 정확히 알까?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야당과 식사하라는 조언이나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거부에 일리가 있듯, 직권상정 요청에도 일리가 있을 것이다.

여당 의원들이 직권상정을 청원하는 장면에서 국회의장이 고함치고 자리를 박찬 것이 과연 정치적 해법이었을까? 결말은 속마음에 가둬둔 채로 “야당과 협상하고 또 협상하라. 법안들의 직권상정은 나의 최후 판단에 맡겨 달라”하고 묘한 여운으로 여야를 같이 압박했더라면, 어차피 갑작스레 국회의장이 부각할 상황에서 그 존재감에 피로를 느낀 국민이 훨씬 줄었을 것이다. 국민을 위한 정치와 삼권분립이 아직은 모순관계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