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대환 작가·문학지 `ASIA` 발행인
▲ 이대환 작가·문학지 `ASIA` 발행인

`대한민국의 위대한 만남-박정희와 박태준`이라는 실록을 집필할 때 나는 다른 저서들의 경우와는 달리 `작가의 말`부터 미리 써두었다. 왜 쓰는가? 이것을 내 작가정신에 똑바로 새겨서 게으름을 스스로 제압하려는 의식적 조치였다. 내가 그 책을 쓴 이유는 3가지였다. 책으로 옮기면서 조금 더 가다듬었지만, 그때 메모를 인용해 보겠다.

1) 약속을 지키는 것은 무엇보다 지키는 자의 즐거움이다. “내가 만났던 박통 얘기도 우리가 많이 했는데, 이 선생은 정리해볼 수 있겠소?” 이 질문을 박태준이 나에게 던진 때는 2011년 한가위 무렵이었다. 강요든 청유든 그런 낌새조차 묻지 않은 것이었다, 다만, 말 자체에 예리한 무엇이 번뜩인 찰나는 있었다. 그것을 나는 냉큼 알아차렸다. `박정희`란 이름만 내놔도 삿대질부터 해대는 세력이 만만찮은 세태인데 앞날이 창창한 작가로서 `박태준이 만난 박정희`를 쓸 수 있겠느냐, 이것이었다. 나는 생각을 가다듬어 대답했다. “어떤 가치를 옹호할 것인가, 이 기준의 문제입니다. 옹호할 가치를 개인의 명예관리보다 하위에 두는 것이 정치계도 연예계도 아닌 한국 지식사회의 현실입니다만, 작가까지 그래서는 안 된다고 저는 주장해 왔습니다.” 이래서 내 삶에 하나의 새로운 약속이 성립되었고, 이 책에는 그 약속을 실천하는 뜻도 담았다.

2) 고난의 시대는 영웅을 창조하고, 영웅은 역사의 지평을 개척한다. 그러나 인간의 얼굴과 체온을 상실한 영웅은 청동이나 대리석으로 빚은 우상처럼 공적(功績)의 표상으로 전락하게 된다. 이 쓸쓸한 그의 운명을 막아내는 길목을 지키는 일, 그를 인간의 이름으로 불러내서 인간으로 읽어내고 드디어 그가 인간의 이름으로 살아가게 하는 일, 이것이 전기문학의 중요한 존재 이유라고, 나는 생각한다. 두 주인공이 어떤 탁월한 위업을 남긴 인물로만 기억되는 것을 나는 강력히 거부한다. 고뇌, 정신, 투쟁이 반드시 함께 기억돼야 한다. 이것이 국가, 민족, 시대라는 거대한 짐을 짊어지고 필생을 완주한 두 인물에 대한 동시대인과 후세의 기본예의라고 믿기 때문이다.

3) 광복70년은 분단70년이다. 분단은 건국의 미완(未完)을 뜻한다. 지금 우리는 건국시대를 감당하고 있다. 건국의 대장정이 앞으로 얼마나 남았는가를 가늠하기 어려운 광복70년, 그 시련과 영광을 성찰하는 자리에서 우리가 가장 한심하게 여기는 것은 정치권력 동네의 후진성이다. 신뢰를 주는 정치권력에 몹시 목말라한다. 그래도 우리의 갈증을 적셔줄 감로수는 광복70년의 한 지층에서 솟아나고 있다. 이 글은 마르지 않을 그 감로수를 받아놓는 일이다. 우리는 중국고사에서 유래한 사자성어에 익숙하지만 아득한 미래의 어느 날부터 박정희와 박태준이 신뢰에 대한 한국고사의 단골로 불려나오며 `쌍박일심(雙朴一心)`같은 사자성어로 거듭날지 모른다.

위의 3가지 이유가 아니었다면 나는 두 주인공의 완전한 신뢰관계, 시대적 대의를 위한 순정한 고뇌와 열정과 투쟁과 지혜를 재조명하는 작업에 나서지 않았을 것이다. 글이 프리미엄조선에 연재되는 동안이나 책으로 나온 뒤에는 한국의 정치권력 동네, 특히 요새도 포항사람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포항의 정치권력 동네에서 두 주인공이 남겨둔 신뢰와 초심과 순정에 대해 반드시 공부해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포항의 정치권력 동네를 향해 내가 그러한 기대를 가졌던 것은, 싫지만 다시 중국고사를 빌리자면, 연목구어(緣木求魚)에 불과한 노릇이었다.

오늘날의 포항을 있게 만든 두 주인공을 추념하는 자리에 시장이 아예 불참한 것이나, 한 정치인이 온다고 하다가 축사를 사양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는 나타나지 않은 것이나, 거기까지 왔던 몇몇이 “내빈소개 의전에 못 들었다”며 행사 시작도 전에 떠나버린 것은 두 주인공에 대한 `결례`의 확실한 증거들이다.

정치권력 동네가 지상에 없는 거인의 업적을 말로써 칭송하는 것은 정치적인 립 서비스에 불과하다. 그의 고뇌, 그의 정신, 그의 투쟁을 기억하고 공부하고 실천하는 것이 현재의 정치권력을 행사하기 위한 기본예의다. 국가든 포항이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