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원락<br /><br />수필가·경주청하요양병원장
▲ 이원락 수필가·경주청하요양병원장

일제 시대 때는 공산주의자와 자유주의자가 세계를 양분하여서 서로 총을 겨누고 있었다. 그때에는 공산주의가 유행병처럼 퍼져나갔다. 그러나 1989년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고, 잇달아 독일 통일과 소련 공산체제가 무너졌다.

일제 강점기에 많은 사람들은 모두 잘 사는 세상을 지향한다는 공산주의에 매혹을 느꼈다. 공평하게 모두 다 잘사는 사회를 건설 한다는데, 누가 `그건 나쁜 생각이야!`라고 할 수 있었겠는가.

빼앗긴 조국을 찾으려 노력한 사람들의 많은 수가 공산주의자가 되었다. 특히 고등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앞장서서 지지를 하였다. 일본만 물러가면, 서로 춤추며 잘 살 수 있는 세상이 온다는 기대감에, 자원하여 공산당에 입당했다.

또 6·25 사변으로 남침을 당하였을 때, 북한 공산군인은 우리에게 `앞으로 모두가 잘 사는 세상이 올 것이다`라고 위로하였고, 초기에는 공산당원들도 스스로 잘 살기 위해 열심히 일했었다. 그때는 세상의 정보도 어두웠고, 봄에 풀뿌리를 캐어먹는 춘궁기가 있을 정도로 가난했던 시절이었다.

식자층의 대부분이 그 사상을 찬성했고, 6·25전쟁 전후에 공산주의의 매력에 빠져든 사람들은 북한으로 가버렸다. 안타깝게도 그들은 조국과 민족을 아주 많이 사랑하던 사람들이었다. 필자도 만일 이 시대에 성장했다면 그들의 좋은 슬로건에 속아서 공산당원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도 더 풍족한 생활은 어려웠고, 자기를 위한 노동이 아니라 공동체를 위한 노력이어서, 자기에게 직접 돌아오는 소득이 없었기 때문에 흥미가 자꾸 줄어들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소련 연방이 해체되는 것을 보고서야 실상을 알아차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미래를 모른다. 공산주의 이론을 만든 학자들도 그렇게 망하리라고는 짐작도 못했을 것이다. 인류의 미래를 예측하는 학자들의 학설이 나중에 잘못으로 판명되면 그의 노력과 그를 믿었던 사람의 기대는 헛된 것이 된다.

지금은 그 사상이 사라져 버렸다. 중국도 자본주의적 요소를 가미하고 있고 북한이라는 국가는 폭력 조직체인양, 장성택을 죽이는 과정은 거의 깡패의 소행과 다를 바 없었다.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버릴 사상이 사변 이후에도 남한에 숨어사는 공산주의자가 있을 정도로 왜 그렇게 흠모의 대상이 되었을까?

그 사상에는 결정적으로 큰 약점을 가지고 있었다. 생산을 해도 국가에 바치고 나면 노력의 효과는 눈에 나타나지 않았다. 자기 몫이 너무 적었다. 인간에게 있는 소유욕이라는 기본 욕구를 전혀 포함시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후 남북한에는 사상 검열이 심했다. 자유당 시절 일본에 놀러갔던 한 대학생은 자기도 모르게 공산당 집에 놀러 갔다가, 귀국 후에 괴로움을 많이 겪기도 했다. 약 20년 전에 중국의 연변에 갔을 때, 그곳의 주민은 나에게 `공동 토지 생산은 형편없으나, 집 옆에 있는 개인이 만든 텃밭에는 채소가 잘 자라고 있다`고 했다.

오늘날 자본주의에서는 마음대로 재산을 축적할 수 있다. 다만 세금이나 복지 정책으로 빈부의 차이를 줄일 뿐이다. 지금은 대량 생산과 소비의 신자유주의로 더욱 성장을 부채질하는 세상이 되었지만, 빈부의 격차는 더 심해질 가능성이 많다.

더 많은 생산을 위해 하늘로 올라가는 까만 공장의 연기는 한계가 있는 지구를 파괴하지나 않을까? 신자유주의 부산물이 우리를 위협할 것 같다. 미래의 불안에 대해 좋은 답을 제시하여 노벨상을 받는 인재가 나타나기를 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