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기억의 저편에는

▲ 조낭희<br /><br />수필가
▲ 조낭희 수필가

산길은 가파르고 인적이 없다. 가을의 숨결이 은은히 숲 속을 떠돌 뿐, 햇살은 나무 위 높은 곳에서 어른거리고 새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등줄기가 촉촉해져 올 무렵 도토리 떨어지는 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린다. 모처럼 동생과 둘이서 갑장사를 오른다.

해발 806m의 그리 높지 않은 갑장산은 연악이라 불리기도 한다. 뾰족하면서도 모가 나지 않아 상주사람의 순후한 인심을 대변하는 산이다. 게다가 내 유년의 기억을 오롯이 품고 말없이 받아주는, 거부할 수도 부정할 수도 없는 핏줄과도 같다. 상사바위와 백길바위, 사선암이 풀어내는 다양한 전설과 멋진 풍광을 자랑하는 갑장산의 9부 능선에 갑장사(甲長寺)가 자리 잡고 있다.

절은 상주 4장사(북장사, 남장사, 승장사) 중 으뜸가는 사찰로 고려 공민왕 22년(1373) 나옹선사가 창건했다. 기도발이 영험하다고 알려진 절은 암자처럼 작고 소박하다. 1990년 법당이 화재로 전소하자 세웅 스님의 노력으로 청정한 도량으로 거듭난다. 스님은 수년 전에 열반하셨지만 갑장사는 그 뜻을 이어 청빈하고 실천적인 정신을 그대로 지켜나가고 있다.

어린 시절 할아버지는 해마다 우리 남매들을 데리고 이곳으로 소풍 오는 것을 잊지 않으셨다. 여름 더위가 한 풀 꺾이면 어머니가 싸 주신 도시락을 메고, 다래와 머루가 익어 가는 가파른 산길을 다람쥐처럼 잘도 올랐다. 할아버지는 현판의 글씨를 풀이해 주시기도 하고 이곳을 빛 낸 학자들의 일화도 들려주셨지만, 어두컴컴한 법당에서 머리를 조아리는 불자들 뒤에서 훔쳐본 무섭고 두렵던 부처님의 존재만은 잊을 수가 없다. 인간에 대한 연민 같은 서글픔을 어렴풋이 느낀 소중한 경험이었다.

작은 부도를 지나고 발끝에 와편들이 채일 무렵 갑장사가 모습을 드러낸다. 단풍나무와 산벚나무가 마당 끝에서 반짝인다. 잊었던 기억들이 흑백필름처럼 돌아가고 가슴이 뛴다. 기억은 퍼즐 맞추듯 빨라진다. 긴 돌계단을 오르는 순간, 가을빛을 쬐고 있을 퇴락해가는 법당에 대한 기대는 산산이 무너졌으며, 덩달아 유년의 기억도 달아나 버렸다. 새 옷을 차려입은 소년과도 같은 사찰이 맑고 티 없이 서 있을 뿐이다. 40여 년만의 해후는 어색하기만 하다.

절 뒤편에 넓게 펼쳐진 대숲과 마당을 지키는 삼층석탑만 옛 모습 그대로이다. 작은 텃밭에는 배추가 참선하듯 정갈히 자라고, 추녀 끝에 달린 풍경 너머로 푸른 하늘만 눈부시다. 법문을 하지 않고 참선과 울력으로 몸소 불성을 보여주신 이 시대의 선지식 세웅 스님의 전설 같은 이야기를 떠올리며 나는 두 손을 모은다.

깨끗이 비질된 마당에서 선잠 든 햇살이 깰까 조심조심 법당 문을 연다. 어떤 부처님이 계실까 호기심 가득한 나를 금동관세음보살상이 반긴다. 눈도 마주치지 못하던 그 옛날의 부처님이 아니다. 정성을 담아 삼배를 하는데 뿌듯한 무언가가 올라온다. 험한 세상에 청빈한 정신을 잃지 않고 품격을 지켜온 갑장사가 고맙다. 유교정신이 강한 선비고장에 어울리는 등불 같은 사찰이다.

 

▲ 상주 갑장사는 상사바위와 백길바위, 사선암이 풀어내는 다양한 전설과 멋진 풍광을 자랑한다.
▲ 상주 갑장사는 상사바위와 백길바위, 사선암이 풀어내는 다양한 전설과 멋진 풍광을 자랑한다.

급변하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도 한눈을 팔지 않고 고향을 지켜온 아름다운 혼불 앞에서 나는 짧았던 내 유년을 떠올린다. 들과 산으로 마음껏 뛰어놀던 그 때도 지금처럼 하루해가 짧았다. 어둑해지면 집집마다 어머니가 부르는 소리가 들려오고 총총히 집으로 흩어지던 내 어린 친구들과 형제들에 대한 아련한 기억들, 그토록 소중했던 기억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모든 것이 사라지고 가슴에 애절한 그리움이 쌓일 때 우리는 비로소 깨닫게 된다.

내 곁에는 흰머리 성성한 동생이 그 옛날의 할아버지처럼 어렵고 고답적인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도시 생활을 접고 고향을 지키다 한 줌 흙으로 돌아가신 것처럼 동생에게서 어쩔 수 없는 회귀본능을 읽는다. 도시에서 청춘을 소진한 그가 새벽이슬 맞으며 살아가는 강아지풀이 되기를 꿈꾸는 것 같다. 가슴이 젖어온다.

뿌리에 대한 자긍심과 애향심은 거대한 자본의 흐름에 영혼을 팔지 않도록 나를 지켜 주었다. 자유를 꿈꾸던 내게 거추장스럽고 때로는 족쇄 같았던 뿌리, 돌이켜 생각하니 수십 억 유산보다 더 풍유롭게 나를 키워준 것들이다. 가난하던 시절, 내 어린 날의 영혼은 결코 초라하거나 남루하지 않았다. 그 저린 기억 저편으로 갑장사가 꿋꿋하게 서 있다.

많은 것을 이루고 물질적인 풍요 속에서 살아가는 지금은 삭막해진 내면과 자주 맞닥뜨린다. 도시는 끊임없이 서로를 비교하며 저울질한다.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상대적 박탈감이나 열등감으로 한없이 초라해질 수 있다. 평범하고 소박한 삶은 자존감 없이는 불가능하다. 나는 갑장사를 바라보며 윌리엄 워즈워드의 시 한 편을 떠올린다.

“한때 그렇게 빛나던 광채가/ 지금 내 눈에서 영원히 사라진들 어떠랴/ 풀의 광휘의 시간, 꽃의 영광의 시간을/ 다시 불러오지 못한들 어떠랴/ 우리는 슬퍼하지 않고, 오히려/ 뒤에 남은 것에서 힘을 찾으리라.”(`영생불멸의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