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기억 속에 멈춘 시간들

▲ 조낭희<br /><br />수필가
▲ 조낭희 수필가

유영하듯 이어져 있는 길을 달리다 보면 이내 사색이 거추장스러워진다. 몇 채 되지 않는 집들이 이마를 맞대고 살아가는 산골마을에는 정갈하게 다듬어놓은 밭이랑 사이로 부는 바람처럼 욕심 없고 순박한 사람들이 시간을 잊고 살아갈 것만 같다. 찔레꽃이 하얗게 피는 봄이면 마을은 햇살에 반사되어 그야말로 눈이 부시도록 투명하다.

압곡사는 은해사의 말사로 신라 문무왕 17년에 의상대사가 창건했다. 아미산 봉우리에서 나무로 오리를 만들어 던졌더니 이곳에 떨어져, 절 이름을 압곡사(鴨谷寺)라 지었다. 배 모양을 한 선암산의 조타석 자리에 법당을 앉혀 군위에서 가장 오래된 절로 기록되어 있다. 물을 상징하는 수태사가 산 너머에 있어 풍수적으로 조화를 이루는 명당인 셈이다.

방금 지나온 사하촌이 옹기종기 발아래 펼쳐지고, 몸은 구름 위를 산책하듯 가볍다. 노송들이 줄지어 선 비탈길을 휘휘 돌아서 내려가면 불이문과도 같은 돌계단을 올라 압곡사 마당에 이른다. 하늘과 산들이 오로지 압곡사를 위해 존재하듯 아늑한 지형 속에서, 170년 된 전각은 겸손함을 잃지 않는다.

의상대사와 사명대사를 비롯해 수많은 고승이 득도한 곳으로, 선사 아홉 분의 진영이 문화재로 보존되어 있는 유서 깊은 사찰이다. 압곡보궁이라는 전서체의 현판이 사리를 봉안했다는 화려한 과거를 말해준다. 지금은 대중과의 소통을 꾀하기보다는 빈 하늘처럼 청정하고 내공이 깊은 사찰임을 단번에 알 수 있다. 시간의 흐름이 멈춘 듯 적막하던 산사가 오늘은 부산하다.

10여 년 전에 만난 압곡사의 첫 느낌은 강렬했다. 고독을 사랑하되 결코 무력한 느낌이 들지는 않는, 한 계절이 빠져나가는 마지막 출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사에 초연해 보이는 그 모습이 좋아, 불자인 친구를 채근하여 달려오곤 했다. 절은 늘 적막했다. 한 번도 스님이나 기도하는 불자와 마주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압곡사는 한결 같은 모습으로 나를 맞아주고 품어주었으며 또 배웅해 주었다.

오늘은 운이 좋은 날이다. 아미타부처님께 108배를 하고 나오는데 스님이 차를 권하신다. 뜻밖에 주지 보안 스님과 젊은 지산 스님이 공양주 보살 없이 살림을 꾸려가고 계셨다. 정갈한 살림 솜씨만큼이나 정겨운 도반으로의 모습도 인상적이다. 특별히 선방에서 수행하시던 각혜 스님까지 오셔서 잔칫집처럼 활기가 넘친다. 첩첩 산중에서 각혜 스님이 만들어 주신 비엔나커피 맛은 참으로 환상적이다.

스님 바리스타의 재담과 멋이 어우러진 산방 카페를 초가을 햇살이 기웃거리고 뜰 앞의 채송화가 부러운 시선을 던진다. 처음 압곡사를 찾았을 때 난생 처음 받아보던 소박한 공양이 떠오른다. 나는 그 날 적막감이 감도는 산사의 분위기에 홀린 듯 빠져 들었다. 햇살이 꾸벅이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적막했다. 눈이 시린 한낮의 풍경은 과거로 향하는 거대한 늪 같기도 하고 마이크로 세계처럼 자연의 숨결이 생생하게 살아서 쿵쾅댔다.

실핏줄처럼 서로를 보듬고 살아가는, 조촐한 평화가 넘실대는 압곡사가 내 첫사랑의 산사인 셈이다. 마당 위로 쏟아지던 은빛 햇살과 바람의 숨결, 파리한 잎새의 정적이 그리운 날이면 마음이 먼저 달려온다. 꿈을 꾼 것 같기도 하고 전생에 있었던 일처럼 아련한 기억들이 눈물처럼 번져오는 곳이기에, 나는 공감할 수 있는 벗들에게만 소개한다. 그리고 내 은밀한 아지트가 함부로 오염되지 않기를 잊지 않고 기도한다.

 

▲ 군위 압곡사
▲ 군위 압곡사

山堂靜夜坐無言(산당정야좌무언)/ 物物拈來無?碍(물물염래무가애)/ 着得心頭切莫忘(착득심두절막망)/ 六塵心識本來空(육진심식본래공)

산속 토굴의 밤은 고요한데 말없이 앉았으니/ 오고가는 경계마다 걸림이 없도다/ 마음 끝자리를 간절히 붙잡아서 잊지 말지어다/ 바깥 경계인 객관과 주관은 본래 공하노라.

나의 이기심을 비웃듯 지산 스님이 마당에 서서 주련을 읊고 풀이해 주신다. 주지 스님과 혜각 스님은 짧은 커피 타임을 끝내고 예초기를 메고 햇살 속으로 걸어가신다. 붉은 샐비어와 맨드라미가 경청하는 마당에는 관조하는 즐거움에 젖은 눈빛들이 모여 있다. 백로인 오늘 가을햇살은 유난히 따사롭고 압곡사는 평화롭다. 마당 끝에 모여 그리움을 달래는 장독들을 바라보며 나는 텅 빈 빨랫줄에 젖은 승복과 고추잠자리를 그려 넣는다.

석탑도 석등도 없는 마당이 울적해 보일 때면 연대감을 상실한 자의 소외감 같은 외로움이 먼저 떠올려지던 압곡사였다. 석탑 주변에 잡초가 무성하고 늙은 느티나무의 흐린 시선이 애잔해 보일 때면 마음은 더욱 심산했다. 하지만 그것은 기우였다. 점잖은 주지 스님과 지성을 갖춘 지산 스님의 따뜻한 눈빛과 행동 속에서 압곡사를 얼마만큼 사랑하는지를 읽었다.

젊고 희망찬 압곡사의 속살 앞에서 오늘 하루도 행복했다. 일을 하시던 스님들이 집으로 향하는 나와 친구에게 방금 딴 호두 세 알씩을 건네주신다. 십 년 동안 만나 왔던 압곡사와 오늘 하루 새로운 모습의 압곡사, 어느 것이 본래 모습이런가? 생각에 잠긴 내게 압곡사가 속삭인다. 시방삼세가 한 덩어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