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계신 곳은 어디에

▲ 조낭희<br /><br />수필가
▲ 조낭희 수필가

사불산 중턱에서 길은 갈라진다. 윤필암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오솔길을 걷는다. 깊은 산 중에 숨어서 자라는 전나무들이 있어, 가파른 시멘트 길은 구도자의 길처럼 숙연하면서도 평화롭다. 나는 습관처럼 하늘을 올려다본다. 나뭇잎 사이로 드러나는 햇살 사이로 누군가의 마음이 스쳐 지나가기도 하고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따사로움도 기억된다.

다람쥐가 숨바꼭질을 하고 풀벌레 소리가 지지 않고 존재감을 알려오는 곳, 숲은 푸른 허파처럼 싱그럽고 울창하다. 등줄기에 땀이 흐르지만 하염없이 걸을 수 있을 것만 같다. 머지않아 숲을 장악할 매미의 울음에도 제법 힘이 실려 우렁차고, 내 안에도 어느 새 초록 물결이 일렁인다.

묘적암은 신라 646년(선덕여왕 15)에 부설거사가 창건하였으며 고려말에 나옹 선사가 출가하여 수행한 사찰로 유서 깊은 암자이다. 성철, 서암 스님처럼 덕이 높은 고승들의 수행처로도 유명하다. 오르막길에서 땀을 식히며 돌아보니 윤필암 비구니 스님 한 분이 작은 물통을 들고 산모롱이 비탈길을 걸어오신다. 점심 공양 후 포행 중인 스님의 모습이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세련된 도시 여인을 닮은 윤필암에 비해 소탈하면서도 기품 있는 남성적 분위기의 산사, 묘적암은 초행길이 아니다. 때 묻지 않은 스님이 지난 시간을 스케치하며 나무처럼 살아갈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며 비탈길을 오른다. 노스님의 온화한 미소 한 자락이 그리운 시간, 모퉁이를 돌자 소박한 반가의 기와집 같은 암자가 모습을 드러낸다. 텃밭으로 사용되었을 법한 황무지에는 개망초가 흐드러지게 피어 암자를 밝힌다.

탁 트인 터에 자리 잡은 묘적암에는 오후의 햇살이 마당에 뒹굴 뿐 인기척이 없다. 활짝 열린 법당 문을 보니 걸음이 빨라진다. 낡고 오래된 산문의 겸손함이 가슴을 적시는 곳, 한마음으로 진리에 귀의한다는 일주문이면 어떻고, 진리의 세계인 불국토에 들어서는 불이문이면 어떠리. 고향 집 앞에 선 것처럼 마음이 편안하다.

삐거덕 소리를 내며 낡은 산문이 열린다. 객이 왔음을 알리는 산중 신호음이 좋다. 행여나 스님이 수행 중이거나 오수를 즐기지는 않을까 조심스럽다. 절집 같지 않은 편안한 건축 구조 때문일까? 숨을 죽이고 살쾡이처럼 살금살금 들어서는 나를 `묘적암`이라는 현판이 반긴다.

뜰 위에는 회색빛 고목이 댓돌을 대신해 누워 있다. 나는 부처님 계신 것을 까맣게 잊고 마루에 앉아 고즈넉함을 즐기다가 뒤늦게 법당으로 들어갔다. 머리를 숙이고 들어가야 하는 천장 낮은 법당에는 관세음보살이 봉안되어 있다. 반질반질 윤이 나는 종이 장판과 온돌방이 주는 특유의 포근함이 긴장을 풀어준다. 절집에서 느껴지는 엄숙함은커녕 어머니 계신 안방처럼 편안하다.

법당은 참으로 소박하고 정갈하다. 1500년이라는 긴 역사에도 불구하고 과욕을 부리지 않은 청빈한 흔적들이 따스하게 감겨든다. 법당문을 열면 건너편 봉우리에 있는 사불암이 한눈에 들어오니 명당터가 분명하다. 진평왕 9년(서기 587년) 사면에 여래의 상이 새겨진 한 척이나 되는 큰 돌이 붉은 비단 보자기에 싸여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이야기가 삼국유사에 실려 전하는 사불암이다.

`일묵여뢰`라는 편액도 가슴에 와 박힌다. 침묵은 곧 우레와 같으며, 그 폭넓은 파장은 언제나 본질을 향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나옹 선사가 쓴 마음 심(心)을 가슴에 새긴 채 마당 한가운데에 박혀 있는 돌도 예사로이 보이지 않는다. 침묵과 마음, 불심의 상관관계를 생각하며 나는 잠시 내면을 들여다본다.

 

▲ 사불암에서 바라본 묘적암.
▲ 사불암에서 바라본 묘적암.

마침 텃밭에서 올라오는 스님께 인사를 건네자 심기 불편한 표정으로 무뚝뚝하다. 귀찮아하는 기색이 역력한 목소리에 쫓겨나듯 돌아서 나왔다. 당황스럽고 무안하다. 묘적암과 스님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컸던 걸까? 산사 기행을 하는 동안 좋은 것만 보아왔던 내게 새로운 화두 거리로 다가온다.

나는 무엇을 위해 다녀간 지 달포도 되지 않은 시점에서 다시 묘적암을 찾았으며, 하필이면 일면식도 없는 스님이 그토록 뵙고 싶었던 걸까? 일부러 먼 길을 달려온 스스로가 부끄럽고 원망스럽지만 이 또한 불교와 부처님을 제대로 알아가는 과정이리. 윤필암 사불전 법당에 들러 108배를 하며 마음을 다스린다. 몸은 땀으로 흠뻑 젖고 마음은 평온해져 온다.

명성 있는 절집이나 훌륭한 스님의 법문 속에서만 부처님을 만나려고 헤매다녔던 나의 아둔함이 문제였다. 승복을 입지 않은 사람들 속에도 부처님은 존재할 것이며, 절이 아니라도 생활터전 어디서든 부처님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을 간과했었다. 나는 너무 먼 곳에서 부처님을 찾았다.

묘적암 앞에 누렇게 떠서 고사한 두 그루의 전나무가 자꾸만 아른거린다. 아침저녁으로 예불 소리 들으며, 사불암을 우러러볼 수 있는 명당자리에서 자라던 전나무가 고사한 것은 불성이 없어서였을까? 아무리 좋은 명승터라도 내 안에 불성이 없으면 결코 부처님을 만날 수 없다. 나는 고사한 전나무의 명복을 빌며, 조금 가벼워진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응시하며 사불산을 내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