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대학

1년 전 대구의 어느 방송사에서 나에게 제안한 프로그램 이름이 `시시비비`였다. 우리 사회가 당면(當面)하고 있는 문제를 다각도(多角度)로 조명하고 대안을 제시해 달라는 것이었다. 지난 2일 화요일 방송사 프로그램 개편에 따라 `시시비비` 마지막 방송을 하게 되었다. 적잖은 소회(所懷)가 들었다. 시시비비에 대한 여러 가지 상념(想念)이 찾아든다. 내가 보고 있는 21세기 한국사회에 대한 불편한 마음은 1년 전이나 매한가지다.

조선중기 선비이자 문인이었던 허후는 만년(晩年)에`시비음(是非吟)`이란 7언 고시를 남긴다.“시비진시시환비(是非眞是是還非)/불필수파강시비(不必隨波强是非)/각망시비고착안(却忘是非高着眼)/역능시시우비비(力能是是又非非)”

우리말로 번역해보면 이렇다. “진정 옳은 것을 시비하면 옳은 것도 그른 것이 되니, 시비의 물결을 억지로 따를 필요는 없다네. 시비를 잊어버리고 눈을 높은 곳에 두면, 옳은 것은 옳다 하고 그른 것은 그르다 할 수 있을 것이네.”

허후는 젊어서 대쪽 같았고, 시비분별(是非分別)에 남달랐다고 전해지는 인물이다. 그랬던 사람이 나이 들어 시비분별의 허망함과 무의미를 홀연(忽然)히 깨달았던 모양이다. 조선시대 선비라면 누구나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의 `오상(五常)`을 알 것이고, 그 가운데 네 번째 덕목(德目)이 시비지심(是非之心)으로 표현되는`지` 아니겠는가! 맹자의 인의예지에 동중서가 신을 합한 것이 오상이며, 이것은 오륜(五倫)과 더불어 다섯 가지 중요한 덕목으로 간주되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것처럼 인은 `측은지심`으로, 의는 `수오지심`으로, 예는 `사양지심`으로, 신은 `광명지심`으로 연결된다. 그와 같은 오덕을 실천할 수 있다면 세상은 한결 살만하고 아름다우며 풍성(豊盛)할 것이다. 그런데 어디 그러한가?!

정치적으로 보건대 우리는 아직도 이른바 `87체제`테두리 안에서 살고 있다.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서 촉발(促發)된 국민들의 분노와 연민(憐憫)과 연대(連帶)가 만들어낸 결과물이 `87체제`다. 그해 6월을 뜨겁게 달구면서 기득권(旣得權) 세력의 백기투항(白旗投降)을 이끌어낸 6월 항쟁의 함성(喊聲)이 귓전에 또렷하다. 당시 우리는 물질적으로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불의에 저항하고 분노하며 연대할 줄 아는 시민의식을 체현(體現)하고 있었다.

하지만 3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2015년 6월 시점에 주위를 돌아보면 쓸쓸하기 이를 데 없다. `세월호 참사`1주년이 넘었지만, 알려진 것은 없고 이제 그만하자는 목소리만 높아간다. 유가족들의 애끓는 심사(心思)에 공감하고 연대하는 사람들도 적잖지만, 망각(忘却)의 늪으로 빠져드는 인총(人叢) 또한 적잖다. 경북대 총장 부재상태가 10개월로 접어들었지만, 이 문제의 심각성과 대응방안을 부심(腐心)하는 교수들은 그다지 많지 않다. 훨씬 많은 수의 교수들은 연구와 강의, 프로젝트로 분주한 것이다.

자유롭게 진리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시비분별이 마땅히 필요하다. 옳고 그름을 분간하지 아니하고, 이해관계(利害關係)나 친소관계(親疎關係)에 따라 사태를 이해하고 수용한다면 세상이 어찌 되겠는가?!“우리가 남이가?!”하는 허언(虛言)의 노예나 종복(從僕)이 되고 말 것이다. 이러매 허후가 만년에 도달한 시비분별의 덧없음과 쓸모없음은 젊은 날의 치열함과 시비지심이 있었기에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음습(陰濕)하고 추악(醜惡)하며 냄새 나는 곳이 적지 않다. 그와 같은 환부(患部)를 과감히 도려내고 후손들에게 아름다운 공동체(共同體)를 물려주기 위해서는 시비지심 같은 분별이 여전히 절실(切實)하게 요구된다 할 것이다. 시비를 넘어서는 달관(達觀)의 경지는 허후처럼 인생의 끄트머리에서 추구(推究)해도 늦지 않을 듯하다. 그러니 오늘도 정의와 불의, 옳고 그름, 선과 악을 분별하고 실천궁행(實踐躬行) 하는 자세를 가지는 것이 어떠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