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부환 유럽경제문화연구소장

프랑스인들은 영국에 대한 묘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 독일과 프랑스 그리고 영국이 유럽을 이끌어 가지만 이들은 영국을 유럽 변방의 섬쯤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1946년 영국 수상 처칠이 취리히에서 “유럽도 똘똘 뭉쳐 미국과 비슷한 유럽합중국을 건설해야 한다”고 외쳤다. 그러나 사실상 유럽통합은 독일과 프랑스에 의해 이뤄지고 있으며 영국은 언제나 한 발짝 비켜 서 있다.

영국언론 등에서 20세기 최고 수상으로 처칠을 언급할 때면 프랑스인들은 대부분 드골을 떠 올린다. 2차 대전 당시 영국 전시내각이었던 처칠이 미국 루스벨트대통령과 함께 프랑스 망명정부 수반이었던 드골을 불신하고 소위 왕따를 시켰다는 비망록 등을 프랑스인들이 대체로 수긍하고 있다.

`독일과 프랑스는 이웃나라로서 사소한 일로는 티격태격하지만 중요한 일에는 머리를 맞댄다. 프랑스와 영국은 사소한 일에는 문제가 없지만 중요한 일에는 대립한다.` 잘 알려진 외교가의 이야기다.

90년대 말, 유럽 광우병 파동 때의 일이다. 1998년 유럽연합(EU)집행위가 광우병의혹이 있는 영국산 쇠고기의 금수조치를 해제했지만, 프랑스는 끈질기게 수입 금지를 고수한 적이 있다. 도버해협을 통해 영국산 광우병 소고기가 프랑스로 유입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며 해저터널을 틀어막았다.

양국 간의 먹거리 시비는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영국인들은 13세기부터 `개구리를 잡아먹는 사람`이라고 프랑스인들을 몰아쳤다. 영국인들이 지금도 감정적으로 프랑스인을 대할 때 쓰는 개구리라는 표현이 여기서 유래된다. 물론 프랑스인들은 이것을 두고 무식한 영국의 부엌문화 때문이라고 맞받아친다.

섬나라 영국과 프랑스(유럽대륙)를 잇기 위해 도버해협을 관통하는 해저터널은 19세기 초 프랑스황제 나폴레옹이 지시하면서부터 검토되기 시작했다. 1994년 영국여왕 엘리자베스 2세와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마침내 개통된 해저터널은 양국 간의 불신으로 인해 수많은 곡절을 겪었다. 1880년 자신이 고안한 굴삭기로 터널을 팠던 영국의 버몬트 대령은 프랑스가 해저터널을 통해 `광견병`을 퍼뜨릴 수 있다는 영국정부의 지시로 공사를 중단하기도 했다. 유럽의 광우병 파동 때는 프랑스에서 영국산 쇠고기가 `광우병`의 위험에서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며 해저터널을 막은 것이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말하지만 도버해협의 해저터널을 사이에 두고 `광`자를 반복하며 서로 터널을 막는 행보는 영국과 프랑스의 재미난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올해로 해저터널은 개통 20주년을 맞고 있다. 런던과 파리, 그리고 브뤼셀을 잇는 이 해저터널에는 시속 300km를 달리는 고속열차 유로스타(Eurostar)가 질주하고 있다. 매일 12회 런던과 파리를 2시간15분에 주파하며 영국과 프랑스의 국경을 허물고 있다. 물론 국경을 넘나드는 터널이기에 여권 및 소지품 점검 등의 출입절차는 공항과 별 차이가 없다. 유로스타로 해저터널을 이용하는 젊은이들을 `유로스타 세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지금 많은 파리 청년들은 유로스타에 몸을 싣고 해저터널을 통해 런던을 향하고 있다고 한다. 런던이 파리보다는 비교적 행정규제가 적어 창업하기에 편하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당분간 누적된 재정적자 때문에 유럽연합과 독일로부터 긴축재정을 압박 받아야 하는 처지다. 사회당 집권 후 반(反)기업 정책과 그와 관련된 정서가 한 몫 한 것으로 분석된다. 때 마침 프랑스 일부에서는 좌파 자신들의 성찰과 관련된 책들이 많이 출간되고 있다. 서민들이 먹고 사는 생활문제를 이념 보다는 좀 더 현실적이고 입체적으로 봐야 한다는 내용들이다.

광견병과 광우병으로 번갈아 해저터널을 틀어막은 영국과 프랑스. 오늘날 유로스타에 몸을 싣고 영국으로 향하는 프랑스 젊은이들. 내일 해저터널의 역사는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흥미로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