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대환 작가

엊그제, 오랜만에 남북군사회담이 열렸다. 군사회담은 우리 정부가 이달 30일 판문점 통일각에서 갖자고 제안한 남북고위급회담의 사전 정지작업일 거라는 시각이 유력하더니 어제는 평양 2인자 황병서의 `긴급 단독 회담` 소식이 알려졌다. 부디 남북고위급회담이 정례화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오늘 아침, 문득 나는 평양에서 사귄 그 아우를 그리워한다.

벌써 십여 년 전 일이다. 2004년 여름인가 2005년 여름인가 냉큼 떠오르지 않을 만큼 긴 세월이 흘러갔다. 그해 여름에 평양, 삼지연, 백두산 천지, 묘향산에서 열린 5박6일 민족문학작가대회. 나는 남측 작가단 3조 심부름꾼(조장)이었다. 그때 3조 버스 뒷자리에는 북한의 깡마른 남성이 앉았다. 성은 김(), 김일성대학 정치경제과 졸업, 삼십대 중반. 아마도 김은 보위부 소속이었을 것이다.

우선 나는 김의 살벌한 눈빛이 싫었다. 깡마른 체구가 마치 먹이를 노리는 괭이 같은 눈빛을 발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았다. 우리는 만경대(김일성 생가)에서 일차로 세게 부닥쳤다. 내가 생가 안으로 들어가지도 않고 어슬렁어슬렁 배회하며 담배나 뻑뻑 빨아댔으니 안내(감시) 책임자로서는 이만저만 속이 끓지 않았을 터. 그날 저녁에 북측 안내원들이 총화를 열고 나에게 경고를 보내왔지만, 작가들은 미리 신변안전보장을 받고 있었으니 김과 나는 닷새 내내 불편한 사이로 지내게 되었다.

방북 닷새째, 작별 만찬. 남북 작가들끼리 만남인데 내가 앉은 3번 둥근 테이블에 뜻밖에도 김이 출현했다. 바로 내 왼편 옆자리였다. 나는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동무도 작가야?” 웬일로 김이 예쁘게 웃었다. “아닙네다. 지난 닷새 동안 미운 정 고운 정 많이 들었으니 끝까지 같이 지내면 좋지 않습네까?” 나는 동석을 허용하며 조건을 달았다. “좋아. 대신에 우리 둘은 무조건 `쭉 내기`다. 됐어?” 북한 사람들은 `건배`를 `쭉 낸다`고 했다. “좋습네다.”

김과 나는 곧바로 평양 소주를 건배로 마셔대기 시작했다. 오직 둘만 떠들어댔다. 나는 북한 작가들에게 주려고 가져간 저서들 중에 <박태준 평전>을 그에게 선물했다. “북측에서는 남침을 부인하지만, 이 책에는 인민군이 거의 부산까지 밀고 왔다가 미군한테 쫓겨서 청진까지 밀려가는 얘기도 나오는데, 그거 시비 걸지 말고 그냥 봐. 북측이 일본에게 식민지배상금 받으려고 하잖아? 그거 돈으로 안 주는데, 그거 받아서 전깃줄부터 싹 다 갈아치우고, 발전소 만들고, 도로 철도 항만 새로 만들어야 돼. 그런 공부가 이 책 속에 다 있어. 박태준 선생을 신의주특구 지도자로 모신다는 뉴스가 나온 적도 있었는데, 만약 그분이 생전에 평양을 공식 방문하게 되면 내가 대변인으로 수행할 거니까 그날이 오면 내가 평양 와서 너를 찾으마. 기다려 봐”

우리는 소주 서너 병을 안주도 거의 안 먹고 빈속으로 끊임없이 `쭉 내기`를 해댔다. 나보다 먼저 취한 김이 문득 자기 왼편의 남측 작가를 쳐다보며 털어놓았다. “저는 이대환 선생님이 굉장히 질이 나쁜 사람인 줄 알고 있었는데, 아주 좋은 사람이란 걸 이제야 깨닫게 되었습네다” 이때 내가 김의 어깨를 툭 쳤다. “헤이, 우리 의형제 하기로 하자” “좋습네다”

우리는 굳센 악수를 나누었다. 그리고 내가 외치듯 말했다. “남쪽에서는 의형제를 맺으면 형이 아우에게 이놈, 임마, 이렇게 부르기도 한다. 동무, 아니 임마, 다시 쭈욱 내자” 우리는 의형제 기념으로 여러 잔 더 건배를 했다. 별안간 내 목소리가 좀 젖었다. “우리가 언제 다시 만나겠나? 통일은 못 해도 남북 자유왕래가 허용되는 날이 오면, 그날 내가 반드시 아우를 내 고향 포항으로 초대할 거다. 임마, 포항에는 제철소도 있고 포항공과대학도 있는데, 특히 회가 좋고 술이 좋다. 영일만도 아름답고 일출도 멋져. 그날까지 건강해라”

이것이 김과 나의 마지막 대화였다. 아니, 주변인들이 싸움 났다고 오해할 정도로 더 큰 소리로, 더 시끄럽게 떠들었다. 그러나 기억이 없다. 드디어 김도 나도 필름이 끊어졌던 것이다. 남북교류사에 북한 보위부 요원을 엉망으로 나가떨어지게 만든 `초유의 대취 화해 사건`이라는 뒷얘기를 남긴 그해 여름의 평양. 어느덧 얼굴마저 감감한 그 아우를 언제쯤 포항으로 초대할 수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