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미국 항공관제사 노조원 1만3천명이 파업을 했다. 공무원 파업 금지법을 교묘히 피해 이른바 `준법투쟁`으로 비행기를 공중에 오래 선회하게 만들었고, 200명이 동시에 병가를 냈다. 당시 레이건 대통령은 즉시 성명을 냈다. “그들은 법을 위반하고 있다. 48시간 내로 복귀하지 않으면 일자리는 영영 없어질 것이다”그러나 노조는 믿지 않았다. 항공노조가 대선때 레이건을 지지했기 때문이다. 복귀자는 10%에 불과했다. 정말 대통령은 48시간 후 1만1천여 명을 해고했다.

레이건정부는 공군관제사·퇴직 관제사·예비역 관제사 등을 투입해 80% 이상 정상화시켰다. 연방법원은 파업기금 350만 달러를 동결하고, 하루에 10만 달러의 벌금을 물렸다. 국민불편과 항공사들의 손실을 보상하라는 것이었다. 툭하면 파업을 해왔던 관제사 노조에 진절머리를 내던 국민들은 박수를 보냈다. 해고된 관제사들은 끈질기게 `해임취소소송`을 제기했지만 법원은 결코 들어주지 않았다. 이 일을 계기로 `레이거노믹스`가 가능했고, 미국 역대 대통령 중 뚜렷이 기억되는 지도자가 됐다.

영국의 탄광노조는 석탄발전소에 연료를 공급하기 때문에 막강한 영향력을 과시하면서 수시로 파업을 벌였다. 노동당 정권은 엄청난 국민혈세를 투입하며 노조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발전소를 세울 수 없다는 이유였다. 당시 대처 총리는 “이 고질병을 고쳐달라”는 국민적 여망을 안고 출범했다. 대처는 철저한 준비를 했다. 화력발전소는 1년치의 석탄을 확보해두고, `전투적 노동장관과 에너지 장관“을 임명하고, 언론과는 좋은 관계를 맺었다. 준비를 마친 수상은 “18만7천명의 탄광노동자 중 2만 명을 감원하고, 적자 탄광을 단계적으로 폐쇄하고, 채산성 있는 탄광은 민영화한다”는 시책을 내놓았다. 이렇게 시작된 `노조와의 전쟁`은 꼬박 1년을 끌었다. 그동안 1만 명의 광부가 체포돼 유죄판결을 받았다.

1985년 탄광노조는 백기를 들었다. 당시 영국 BBC방송은 “대처 수상은 향후 적어도 한 세대 동안은 노조가 힘을 쓰지 못하게 약화시키는데 성공했다”고 했다. 그리고 `대처리즘``철의 여인` `노쇠한 영국을 되살린 지도자`란 찬사를 듣고 있다.

박근혜정부는 미국과 영국보다 훨씬 어려운 상황에 있다. 북한은 기회 있을 때 마다 남남갈등을 조장하고, 북의 조종에 동조하는 세력들이 사회 곳곳에 둥지를 틀고 앉아 사사건건 발목을 잡는다. 행정권과 공권력이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고, `법리논쟁`때문에 해고처분이 제대로 실효를 거두기도 어렵다. 국민이 나설 수밖에 없다. 막대한 국민혈세가 적자 공기업 귀족노조의 돈잔치에 흘러드는 것을 언제까지 방관할 것인가. 고질병을 수술하는데는 고통이 따른다. 그 고통을 한동안 감수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