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도마` 김광선 지음 실천문학사 펴냄, 144쪽
“내 詩는 보잘 것 없지만 진정성 하나만큼은 어느 누구 못지 않아요”

▲ 시인 김광선

2003년 창비 신인상을 통해 등단한 김광선(53) 시인의 신작 시집 `붉은 도마`(실천문학사)가 출간됐다.

시를 노동의 생활로부터 끌어올리고 삶을 시적인 것으로 변모하고자 했던 노동시의 전통을 따르고 있는 김광선 시인은 첫 시집 `겨울 삽화`(2000)에서 노동자의 고단한 삶에 잠재돼 있는 아름다움을 찾아내고 이를 서정적으로 시화하는 전통적인 노동시를 보여준 바 있다.

시인의 고향은 전남 목포다. 세 살 때 어머니와 함께 나로도라는 섬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소년 시절을 보냈다. 무척 가난했기 때문에 두 동생은 학교에 다닐 수 없었다. 열입곱 살이 되던 해, 시인은 친구와 함께 여수로 가는 배를 탔다. 여수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통일호 열차를 탄 소년은 덜컹거리는 차량 안에서 마음속에 품은 꿈도 불안함으로 밤새 요동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세상 물정 모르는 어수룩한 섬 소년은 그렇게 도시의 노동자가 되어갔다.

도시로 올라온 소년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지관`을 만드는 일이었다. 지관(紙管)이란 화장지나 접착테이프 속에 들어가는 종이 대롱을 말한다. 소년은 영세한 작업장에서 매일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노동했다. 그때부터 소년은 자신의 삶을 글이나 노래로 풀어내고 싶어졌다. 이후로 그는 유랑극단 생활도 해보고 곱창집을 운영하기도 했다. 밤에는 없는 시간을 쪼개어 책을 읽었다. 술값, 밥값을 아껴 책을 샀다. 일자리를 찾아 전국을 떠돌아다녀야만 했던 그는 마음속으로 희망의 불씨를 지폈다.

 

“남의 삶을 엿보면서 마치 자신의 삶인 양 섣불리 형상화하는 것보다는 자신이 삶을 치열하게 살면서 그 안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삶의 방식과 요구들을 형상화해야 한다.”

등단 후 그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다. 그의 시는 삶에 천착해 있다. 거대한 도시 서울에 정착한 섬 소년은 당시 첫 월급으로 1만8천원을 받았다.

산동네 허름한 쪽방에서 자취하면서 점심으로 50원짜리 빵을 사 먹었다. 아침저녁으로 라면이나 오뎅 볶음을 `신물 날 정도로` 먹었다고 한다. 지관을 만드는 공장을 떠난 그는 한 음식점에 취직하게 된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그는 밖을 내다볼 시간도 없이 밤늦게까지 주방에서 일해야만 했다. 손은 뻘겋게 퉁퉁 불고 몸은 녹초가 되었다.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오자마자 아무렇게나 방구석에 쓰러지는 고된 생활이었다. 당시 그의 배움과 문학에 대한 희망은 거세게 흔들렸다.

공장을 옮길 때마다 기술은 붙고 월급은 올라갔지만 그만큼 돈의 가치는 떨어졌다. 시인의 쳇바퀴보다 사회는 훨씬 더 빨리 돌아갔다. 노조를 꾸릴 인원도 안 되는 공원을 데리고 착취를 일삼는 사업주에 맞서 파업을 주도하기도 했던 그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규모 없는 현실을 변화시킬 방법을 모색했다. 그때 처음 일하던 식당을 떠날 때 주방 선배가 해준 말이 떠올랐다. “식당에 한번 발을 들인 사람은 반드시 식당으로 돌아온다.”

`내가 무슨 연어냐?`

하지만 그는 결국 상처 입은 연어처럼 식당으로 돌아왔다.

언젠가 그를 취재한 기자가 왜 하필 곱창집을 차렸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그의 대답은 단순했다. “그 골목에 곱창집이 없어서….”였다. 자신의 삶을 표현하는 데도 오직 시밖에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시인이다.

“내 시는 보잘것없습니다. 하지만 진정성 하나만큼은 어느 누구 못지않습니다.”

김광선 시인의 시에는 하루의 힘든 노동을 감내한 노동자의 거칠고 투박한 살갗이 있고, 뜨거운 피가 흐른다. 그리고 그 뜨거운 피 속에는 한 가정을 짊어진 가장의 지친 한숨 소리도 녹아 있다. 우리는 이번 시집에 실린 그의 시들을 통해 한 가정의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 한 사람의 노동자로서 시인이 가지는 복합적인 감정과 삶의 결들을 세밀하게 읽을 수 있다.

이 시집에 실린 그의 진솔한 시들은 시인 개인의 이야기에서 출발하지만, 현재 한국 사회에서 가장 많은 인구 비율을 차지하는 40~50대 노동자의 이야기로 귀결된다.

“새라면 아마도 날개였을 것이다

푸른 죽지로 힘껏 창공을 날아오르거나

펄럭이며 어디고 사뿐히 내려앉을

어깻죽지 들여다본 까만 필름은

형광 불빛에 비춰지자

말간 뼈 많이 뒤틀려 있다”

`날개` 부분

노동 현장에서 끊임없이 경쟁해야 하는 중년의 노동자는 집에 돌아와서는 고독과 싸워야 한다. 우리 시대의 아버지들은 쉽사리 자신의 이야기나 생각을 겉으로 표현하지 못한다. 예전의 가부장적인 아버지상과는 또 다른 모습으로 그들은 소외되어 있다. 노동자로서 자본으로부터의 소외, 힘없는 가장으로서 가족들로부터의 소외, 중년 남자로서 삶과 꿈으로부터의 소외가 그들이 현재 겪고 있는 삼중고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저작권자 © 경북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