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이번 선거가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느냐는 보는 사람에 따라 각기 다를 것이다. 나는 쉬운 양비론적 태도를 표명하고 싶지 않다. 누군가는 더 옳고 누군가는 더 틀렸을 수도 있다.

그렇게 길지 않은 선거 기간 내내 사람들은 서로 여러 패로 나뉘어 치열한 논전을 벌이고 더 많은 표를 얻기 위해 싸웠다. 이 결과가 앞으로 몇 년을 결정하게 될 것이다.

선거 기간 동안 나는 어떤 정치인 한 사람 때문에 무척 마음을 썼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젊은이 때부터 나라와 사회를 위해 열심히, 사심 없이 일해 온 것처럼 보였는데도, 현실은 그를 위해 움직여주지 않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야당의 공천을 받지 못했고 무소속으로 선거에 나와 지금 어려운 길을 걷고 있다. 아마도 나는 그에게 선거를 며칠 앞두고 어떤 결정적인 조언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면 후보를 사퇴하는 것이 좋겠다든가 하는 것 말이다.

나라와 사회가 전체적으로 보아 두 패로 나뉘다시피 해서 싸우는 형국에 무소속으로 나와 힘을 발휘하기란 참 어렵다. 그렇지 않아도 야권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진작부터 그에게 왜 `야권 단일 후보`를 위해 사퇴하지 않느냐고 압력을 넣고 있다.

나는 이런 문제 때문에 과연 나는 어떤 정치적 태도를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지를 더 많이 생각하는 나날을 보냈다.

내가 내린 잠정적인 결론은 앞으로 나는 어떤 특정한 정치적 파당의 편에 서는 일은 하지 않아야겠다는 것이다. 그것은 지금 우리 사회에서 어떤 일이 옳고 그른가를 놓고 판단을 중지시키겠다는 것이 아니다. 나는 나 자신의 입장에 서되 그것이 곧 우리 사회의 어떤 부분들이 아니라 전체를 위한 일이 될 수 있는 방식으로 사고해 보겠다는 것이다.

어떻게 해서 그런 추상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느냐고 되물어 올 수도 있다. 그러나 세상은 특정한 파당의 일부가 되어야만, 그 입장들 가운데 어느 하나를 택해야만 옳은 길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결과적으로 나는 정치적 무소속이 되어야겠다. 그러면 사람들은 묻는다. 당신이 투표를 하지 않는 행위 때문에 당신이 옳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득을 얻는다면 그것은 당신을 위해서도 나쁜 일이 아니냐고.

그러나 서로 맞싸우는 두 집단 중의 한 편을 들지 않으면 결과적으로 다른 편을 도와주는 일이 된다는 집단 논리는 이 두 집단의 바깥에 제3의 입장이 존립할 수 있다는 사고를 억압한다. 이 제3의 입장은 다른 두 입장과 같은 평면에 놓인 입장이 아니며, 서로 대립하는 그 두 입장의 어느 하나로 용해될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아니다. 이 제3의 입장은 정치적인 세력을 가진 제3의 입장일 수도 있고, 어느 개인적 신조로서의 제3의 입장일 수도 있다.

선거를 일주일 여 남겨놓은 어느 날 「선운사에서」로 이름 높은 최영미 시인을 만났다. 그는 진보신당으로 출마한 안효상이라는 사람을 위한 지지연설을 하고 왔노라 했다. 선거를 하고 나면 과연 5%나 나올까 한 인물이다. 나는 이 `정치인`의 이름을 학교 때부터 들어왔지만 지금 진보신당은 한국사회의 소수파 중의 소수파다.

이 사람을 위해 연설을 했다는 최영미 시인을 바라보며 나는 이 사람이 진짜 시인의 자질을 가졌다고 생각했다. 전부들 다수파가 되려고 할 때, 대립하는 양쪽의 어느 일부가 되려고 안달이 나 있는데, 그는 다수가 될 가능성이 없는 어떤 사람을 위해 연설을 해주려고 추운 날 경춘선을 타고 서울에 온 것이었다.

진보신당이든 뭐든 나는 소수파가 되려는 시인이 맞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소수파보다 더한 무소속이 되어야겠다. 이것이 문학이 이 세계를 만들어가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