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두 아들을 둔 아버지가 있었다. 하루는 아버지가 큰아들에게 “봄이 되었으니 곡식을 심게 밭을 갈아라”고 지시하자 큰아들은 “예”라고 대답했지만 밭에 나가지 않고 친구들과 어울려 놀았다. 작은아들에게 아버지가 똑같은 말을 하자 작은아들은 “아니오”라고 대답했지만, 곧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을 깨닫고 밭에 나가 열심히 일했다.

4·11 총선에 출사표를 던진 많은 예비후보자들은 거의가 자신이 정치를 해야 한다며 협박성(?) 논리도 서슴없이 펼치고 있다.

이들 대다수는 정치권력을 맛보고 있거나 경험했고 주변에 머물던 사람들로 누구보다 정치권력이 가진 특혜와 힘을 알기 때문에 아전인수식의 행동에도 거침이 없다.

선거기간 동안 표를 얻기 위해 “지역민을 사랑하고 섬기겠다”며 머리를 숙이지만 국회에 입성하고 나면 과연 지역민을 섬겼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지역민을 위하기 보다는 자신의 치부를 먼저 걱정하고 권력남용의 기회를 엿본 사례를 비켜가는 국회의원은 과연 얼마나 될까.

입으로만 “예”라고 대답하고 실천에 옮기지 않은 언행 불일치의 큰아들과 다른 점을 찾아볼 수가 없다.

윤동주 시인은 서시를 통해 죽는 날까지 하늘에 한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노래했다지만 정치인들은 하늘과 땅, 모두에게 부끄러운 행동을 하면서도 `내가 정치의 최적임자`라고 당당하게 외친다. “아니오”라고 대답했지만, 자신이 해야 하는 행동을 실천에 옮겼던 작은아들의 미덕을 우리의 정치판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당리당략에 따라 이합집산(離合集散)을 거듭하는 우리의 정치판에서 이를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일지 모른다. 우리도 백 년의 전통을 가진 정당을, 집무실에 간이침대를 두고 오로지 지역민, 국민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정치인을 만날 날을 볼 수 있는 날을 기대하자. `늦었다고 후회할 때 시작해도 늦지 않았다`는 말처럼 이제부터라도 시작해보자.

경산/shs1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