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환 `ASIA`발행인·작가
고향 독자들과 생각을 나눈다는 봉사의 마음으로 이태에 걸쳐 거의 매주 월요일마다 `세상읽기`를 했다. 새해부터는 다른 글쓰기에 쫓겨 멈춰야 하니, 이제 인사를 겸해 세모(歲暮)의 소회를 밝힐까 한다.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가 “한국의 영웅이 떠났다”고 보도한 고(故) 박태준 선생을 서울 현충원 국가유공자 묘역으로 모시려는 어느 시각이었나 보다. 평양에서 김정일 위원장이 심장을 뚝 멈췄다.

올해는 `세계 독재자들의 수난의 해`로 기록될 만 하다. 1월에는 노점상 청년 부아지지의 분신자살이 촉발한 재스민혁명이 튀니지의 23년 독재자 벤 알리를 축출하더니, 2월에는 이집트의 30년 독재자 무바라크를 쫓아내고, 4월에는 코트디부아르의 10년 독재자 로랑 그바그보를 법정에 세우고, 10월에는 리비아의 42년 독재자 카다피를 사살하고, 11월에는 예멘의 33년 독재자 압둘라 살레를 권좌에서 밀어내고, 12월에는 자연섭리가 북한의 세습왕조적인 독재자 김정일을 땅으로 거둬들였다. 아랍권 시민혁명에는 SNS가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북한에는 SNS가 없어서 주민봉기가 안될 거라는 견해도 부쩍 지지를 받았었다. 물론 SNS가 아랍권 시민들을 민주광장에 모여들게 하는 연락책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그러나 SNS가 없다고 시민혁명이 안 되나? 우리의 4·19의거 때는 전화기마저 귀한 시절이었다. 결코 SNS는 혁명을 일으키지 못한다. 그것은 등사기나 인쇄기를 대신하는 도구일 뿐이고, 인간이 인간적 한계로써 세상을 뒤엎는 거다. 아마도 북한 인민은 60년 넘은 철저한 세뇌와 20년 가까운 굶주림 속에서 인간적 한계를 돌파할 집단저항의 기력마저 고갈했을 거다.

요새 한국 정치판은 어떤가? 진보는 절반의 통합에 성공하고, 보수는 쇄신한다고 야단이다만, 총선의 `아생(我生)`부터 모색하는 그들의 진정성에 대한 의구심과 함께 `꼴통좌파(꼴좌)`와 `꼴통우파(꼴우)`라는 시대적 과제는 고스란히 남았다.

꼴좌는 교만의 만용에 사로잡혀 있다. 세계적 변화의 조류를 마치 고약한 망아지쯤이나 송아지쯤으로 여기는 것 같은, 비록 자신이 몇 차례 땅바닥으로 나뒹구는 고통을 당할지언정 반드시 그 망아지를 길들일 수 있다고 확신하는 것 같은, 비록 자신이 몇 차례 땅바닥으로 나자빠지는 곤경을 겪을지언정 반드시 그 송아지에게 코뚜레를 꿸 수 있다고 확신하는 것 같은, 고체덩어리로 굳어버린 교만의 만용이다. 그것이 피의 폭력마저 투쟁수단이라고 정당화한다.

꼴우는 탐욕을 다스리는 영혼이 매우 빈곤하다. 그들의 내면에는 세상만사를 `돈`과 관련짓는 습성이 마치 썩어빠진 수도배관 속의 녹처럼 덕지덕지 끼어 있다. 그들은 `돈`으로 안 되는 게 없다는 거의 신앙적인 교만을 고체덩어리처럼 머릿속에 박아두고 있으며, 그것으로 곧잘 합리보수들까지 더럽힌다.

꼴좌는 변혁을 외치지만 무엇보다 `정세의 근본적 변화`를 두려워한다. 자기 사상, 자기 신념을 신성불가침으로 절대시하며, 투쟁해서 헤게모니를 잡고 기필코 그것을 실현하자고 맹세한다. 원리주의의 종교집단을 방불케 한다. 꼴우는 무엇보다 `돈`을 우선시하고 중시한다. 돈을 최고 가치로 숭배한다. 종교를 가져보았자 실상은 물신주의에 갇힌 채 기도한다. 물신숭배의 신도들이다. 꼴좌와 꼴우는 적대관계이면서 상생관계이다. 네가 있기에 내가 있고, 너와 내가 싸워야 서로 생존의 영토를 확장할 수 있다는 거다. 늘 적과 동침하며 늘 적과 싸우는 관계인데, 승리는 꼴좌가 독차지한다. 비정규직, 환경, 노동 문제에서 꼴좌는 `정의, 평등, 인간다움` 같은 고전적 불변가치들을 앞세울 뿐만 아니라, SNS 따위를 장악하는 수완이 꼴우보다 월등히 뛰어나다. 그런데 두 세력이 아무리 날뛰어보았자 우리 사회가 그들을 시대적 변두리에 머물게 하는 문화적 역량을 체질화하는 날에는 그들도 인간세상의 구색쯤에 불과해질 거다. 올해 사라진 독재자들을 우리 사회의 이데올로기에 비추면 거의 `꼴좌`인데, 공통점은 개혁과 개방에 대한 완강한 거부였다. 중국 공산당과 소비에트 러시아 공산당이 벌써 80년대에 선택한 그것을 끝내 거부하면서 인민을 억압하고 호도하는 가운데 자신의 권좌옹호를 최우선시하는 `기만의 만용`에 빠져있었던 거다.

더욱 혼란스러울 새해를 예측해보면, 고 박태준 선생의 사상과 실천이 더욱 귀중해 보인다. 그분은 후세들이 우리의 60년대, 70년대를 공평한 시각에서 공부하라고 당부했다. “독재의 사슬도 기억케 하고, 빈곤의 사슬도 기억케 하라!” 이것이다.

오랜 독자들에게 거듭 인사를 드리며, 그분의 삶을 배워서 새해 우리의 삶도 한층 아름다워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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