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월화극 `천일의 약속`서 박지형 역 맡은 김래원

“지금까지는 서연(수애 분)이한테 초점이 맞춰져 있었지만 14회부터는 지형의 비중이 늘어납니다. 내레이션도 하게 되죠. 지형의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김래원(30·사진)은 22일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만나 이렇게 말하며 활짝 웃었다.

그는 요즘 SBS TV 월화극 `천일의 약속`에서 기억을 잃어가는 연인에게 순정을 바치는 남자 박지형을 연기하고 있다.

그는 “드라마가 서연의 감정선을 따라가다 보니 생각보다는 지형의 `진심`이 잘 보이지 않은 것 같다”면서 “그동안 `우유부단하다`며 욕도 많이 먹었는데 앞으로 정말 위대한 사랑, 한 여자를 향한 순애보적인 사랑으로 용서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형은 유복한 가정에서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건실한 청년이지만, 바로 그 `온실 속의 화초`와 같은 모습 때문에 시청자의 속을 무던히도 태웠다.

집안끼리 알고 지내 이미 한가족이나 다름없는 천사표 약혼녀 향기(정유미 분)와 첫사랑 서연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였던 것.

다혈질 누리꾼들은 곧 그에게 `민폐남`이란 별명을 붙여줬고 `찌질하다` `못생겼다`는 인신공격성 발언까지 서슴지 않았다.

“저도 답답했는데 시청자들은 오죽했겠어요.(웃음) 한 5, 6부까지는 저도 지형을 이해하기 힘들었죠. 내가 이 상황이었다면 훨씬 단순한 방식으로 처리했을 텐데 왜 그럴까 싶었어요. 저는 판단이 빠른 편이거든요. 근데 어쩌면 지형은 사랑을 잘 몰랐기 때문에 그랬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서연을 만나기까지는 사랑이 뭔지, 여자가 뭔지도 모르다가 막상 사랑을 만나고 나니 자기가 감당할 상황이 못 됐던 거죠.”

김래원은 “결국은 사랑의 힘이 움츠리고 있던 지형을 떨쳐 일어나게 만든 것”이라면서 “지금까지는 박지형보다 김래원이 더 낫다고 감히 말씀드릴 수 있지만, 앞으로의 박지형은 김래원보다 더 위대할 것”이라며 웃었다.

김래원에게도 지형처럼 가슴 아픈 사랑의 기억이 있을까.

“있었죠.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그 사람 때문에 다 내려놓으려고 했었어요. 그때 그랬으면 지금은 배우를 안 했을지도 몰라요.(웃음)”

`천일의 약속`은 `언어의 마술사`로 불리는 김수현 작가의 작품이다.

드라마라기보다 한 편의 시나 소설을 떠올리게 하는 `문어체 대사`가 특기인 김 작가의 작품은 베테랑 배우들에게도 만만치 않은 도전으로 여겨진다.

불치병에 순애보라는 소재까지 더해져 한층 `문학성`이 짙어진 대사를 표현하기가 어렵지는 않은지 물었다.

“사실 전 원래 그런 스타일을 좋아해요. 시적인 표현을 하고 그 의미를 해석하는 걸 즐기죠. 그래서 가끔은 지금보다 더 추상적이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15부쯤부터는 제 내레이션이 나올 텐데 과연 어떤 표현들이 나올지 기대됩니다.”

김래원은 “이번 작품을 하면서 김수현 선생한테 완전히 반했다. 주옥같은 대사며 표현이 너무 근사해 왜 존경받는 작가인지 절실히 느꼈다”면서 “회사 식구들한테 선생의 다음 작품은 뭐냐고 수시로 확인한다”며 웃었다.

김수현 작가가 보는 김래원의 연기는 어떨까.

“사실 저한테는 별말씀이 없으세요. 극 초반에 옷 좀 신경 써서 잘 입으라는 말을 하셨던 것 외에는 특별히 기억나는 게 없네요. 제가 초반에 파스텔톤 의상을 입었거든요. 캐릭터에 맞게 블랙이나 네이비 계열로 입으라고 조언해서 그대로 하고 있죠.”

김래원은 “언젠가 한번 선생이 `여우처럼 잘했다. 네가 그렇게 섬세한 줄 몰랐다`며 제 리액션을 칭찬해준 적이 있다”면서 “감정 연기 때문에 힘들 때였는데 그 말을 듣고 무척 기뻤다”고 소개했다.

극 중 연인으로 나오는 수애와 연기 호흡에 대해서는 “에너지도 있고 또 굉장히 열심히 하는 연기자여서 함께하는 게 재미있다”고 말했다.

“수애 씨는 연기 포인트를 잘 잡아내요. 필요한 컷을 계산해서 효과를 극대화하죠. 그냥 그 인물이 돼 버리는 저와는 스타일이 많이 다르지만 굉장히 열정적이고 또 연기 잘하는 배우인 것만큼은 확실해요. 기회가 되면 수애 씨랑 또 해보고 싶네요.”

지난 8월 공익근무요원으로 군 복무를 마친 뒤 `천일의 약속`으로 2년 만에 연예계에 복귀한 그는 “그동안 연기에 목이 말라있었다”고 했다.

“연기를 쉬는 동안 지난 10년간 제가 했던 작품들을 다시 찾아봤어요. 지금과는 많이 다르더군요. 지금은 그냥 그 인물이 돼 버린다면 그때는 `흉내`를 낸다는 느낌이었어요. 나이가 드니 확실히 무언가를 바라보는 시야나 사고의 폭이 넓어졌다는 것을 깨달았죠. 더불어 연기를 하고 싶다는 욕망도 더 강하게 일었고요.(웃음)”

김래원은 “군 복무 전에는 3년에 두 작품 정도를 했었는데 지금은 영화든 드라마든 많이 해보고 싶다는 생각뿐”이라면서 “`천일의 약속`이 끝나면 바로 다음 작품을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