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 전, 장석남의 넷째 시집`왼쪽 가슴 아래께에 온 통증`을 읽고 나서 나는 한동안 가슴이 얼얼했다. 시와 노래를 담아두고 스스로 즐기다가 가끔 퍼내기도 하는 내 오른쪽 가슴이 불에 데인 듯 십일월의 가을바람이 들어찬 듯 서늘했다. 통증이었다. 그러나 아름다운 노래의 흥분에 휩싸이는 행복한 통증이었다.

“번짐,/번져야 살지/꽃은 번져 열매가 되고/여름은 번져 가을이 된다/번짐,/음악은 번져 그림이 되고/삶은 번져 죽음이 된다/죽음은 그러므로 번져서/이 삶을 다 환히 밝힌다/또 한번-저녁은 번져 밤이 된다/번짐,/번져야 사랑이지”(`水墨 정원 9`부분)

시집 속에는 `수묵 정원` 서시를 비롯하여 `수묵 정원1`에서 `수묵 정원9`까지 모두 10편의 연작시가 있다. 장석남 시인이 물(水)과 먹(墨)으로 만든 그의 정원은 소슬(蕭瑟)하면서도 품격 높은 것이다. `번짐`이라는 말이 이 노래의 매개항이다. 시인은 “번져야 살지” “번져야 사랑이지”라고 노래한다. 또 “꽃은 번져 열매가 되고/여름은 번져 가을이 된다”고, “음악은 번져 그림이 되고/삶은 번져 죽음이 된다”면서. `번짐`이 사랑과 예술, 삶과 죽음을 깁는 보이지 않는 손이라고 노래한다. 네게로 번지는 내 노래를 너는 듣고 있는가?

/이종암(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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