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가을 한계산성 깊이 들어갔다가

나무 이파리 덮고 누운 토끼의 주검을 보았다

희고 가늘게 육탈된 뼈를

그의 마른 가죽이 죽어라고 껴안고 있었는데

그 검고 겁 많던 눈이 있던 자리에

어린 상수리나무가 집을 짓고 있었다

나무뿌리가 조금씩

조금씩 몸속으로 들어올 때

그는 얼마나 간지러웠을까

내가 아무런 대책도 없이

생의 깊은 곳까지 들어갔다가

누군가에게 나를 내줘야 할 때가 온다면

나도 웃음을 참으며

나무에게 나를 내주고 싶다

벌레들에게 몸을 맡기고 싶다

자연친화적인 생명주의적 사유에서 이 시는 출발한다. 삶과 죽음의 이분법을 초월한 시안이 깊고 그윽하다. 죽음이 삶이고 삶이 곧 죽음이라는 종교적 성찰을 바탕으로 한 이 시에서 시인은 우리 인간도 결국은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라는 인식을 보여주고 있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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