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너스 폴링 평전` 실천문학사 刊, 2만원

세계 최초로 노벨화학상과 노벨평화상을 동시에 수상한 미국 과학자 겸 사회운동가 라이너스 폴링(1901~1994)에 대한 평전 `라이너스 폴링 평전`(실천문학사 펴냄)이 출간됐다.

라이너스 폴링은 `과학`과 `사회운동`이라는 두 개의 실천적 삶을 하나로 조화시킨 인물이었다.

20대에 양자물리학을 복잡한 분자 연구에 응용했고 `분자생물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며 아인슈타인에 견주어지기도 했던 천재 과학자이기도 한 반면, 냉전시대의 매카시즘 광풍 속에서 학자의 양심을 지키며 야만적인 국가 폭력에 대항했던 사회운동가이기도 하다. 그는 과학자로서의 사회적 책임에 바탕한 실천적 지성인의 삶을 살았다.

온갖 역경 속에서 한 개인의 앎이 행동과 실천으로 이어지는 주체적 삶이 될 때 전 세계 인류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을까? 이 책은 냉전 시대 이후의 “불확실성, 부도덕성, 지속적 갈등이 난무”하는 지금 이 사회를 향해 `라이너스 폴링`이라는 보편적 영웅을 제시함으로써 우리에게 그 대답을 들려준다.

라이너스 폴링은 미국 오리건 주 포틀랜드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 친구인 제프레스의 집에 차려진 실험실에서 우연히 보게 된 화학반응에 매료돼 화학자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어머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열여섯 살의 나이에 오리건농과대학에 진학해 체계적으로 과학 수업을 받지만 그곳의 과학 강좌는 폴링의 학구열을 충족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폴링은 이후 칼텍대학원에 진학해 박사학위를 받고 양자역학을 이용해 화합결합의 비밀을 밝혀 미국의 젊은 화학자에게 수여하는 랭뮤어 상을 받는 등 세계적인 과학자로 발돋움해 명성을 얻는다. 1939년에 20세기 가장 중요한 화학 저서 중 하나로 꼽히는`화학결합의 본질`을 출간했고, 그에 대한 연구로 1954년에 노벨화학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1945년 적혈구 모양이 변형되는 유전병의 원인을 밝혀낸 데 이어 단백질의 나선 구조를 설명하였을 뿐만 아니라 인체에 침투해 질병을 일으키는 항원(세균, 바이러스)과 그것을 죽이는 항체의 결합 성질을 알아내며 분자생물학의 장을 열었다. 이렇듯 화려한 폴링의 과학적 삶의 여정은 20세기 과학사의 일면을 한눈에 볼 수 있게 해준다.

사회운동가로 폴링의 삶은 암울했던 세계 현대사의 한 대목에서 한 사람의 신념과 평화를 향한 이상이, 꿈으로 그치지 않고 어떻게 현실화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대학 시절까지만 해도 사회운동가의 면모를 찾아보기는 힘들었던 폴링이 사회운동가로서의 자의식을 싹틔우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은 2차 세계대전 히로시마 원폭 사건이었다. 이때 폴링은 과학자로서의 양심과 사회적 책임을 절실히 느껴 반전 운동을 펼치기로 결심했다. 아인슈타인이 의장으로 있는 핵과학자 비상위원회에 가입해 원폭 반대운동 및 반핵 시민운동에 참여,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핵무기 사용을 반대하는 연설을 했다. 정부와 우익 단체는 이런 폴링을 `공산주의 동조자`라고 비난하며 공격했다. 하지만 그는 `평화`에 대한 신념을 굽히지 않고 대기 중 핵실험에 의한 낙진 위험성을 세계에 알렸다. 전 세계 과학자 1만 1천 명에게 서신을 보내 핵실험 금지 서명을 받아내며 국제 사회의 여론을 환기시켰다. 그럴수록 폴링은 매카시즘 희생양이 될 뿐이었다. 칼텍에서조차 그를 달갑게 여기지 않았고 정부로부터 여권 발부가 거부돼 출국 금지를 당했다. 급기야 핵정책위원회에 침투한 공산주의자 색출 명목으로 국내 안전보장법 행정감시소위원회 소속 상원 의원인 토마스 도드에 의해 미 상원 소위원회에 소환되기까지 했다. 거기에서 폴링은 핵실험 금지 서명 작업을 도와준 명단 제출을 요구받았으나 그는 끝내 밝히기를 거부했다. 1963년, 냉전의 기운이 서서히 거치면서 미 · 소 핵협정이 이루어지자 폴링의 반핵 운동은 공로로 인정돼 화학상에 이어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윤희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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