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락 포항장성요양병원장

아침을 먹은 학생들이 학교에 간다. 제주 시내에는 시끌벅적하기 시작한다. 도로에 표시한 달리기 코스를 따라서 드디어 목적지에 도달하였다. 27시간 19분(휴식 및 식사 시간 포함) 만에 도착을 겨우 해 내었으나 그곳은 썰렁했다. 결승선을 지키는 몇 사람이 앉아서 졸고 있었다. 그래서 “나, 왔어요!”라고 소리 지르니 도착시간을 알려 주면서 다시 들어오라고 했다. 왜냐하면 완주 사진을 찍기 위해서다.

도착 2분 쯤 후에 한사람이 골인을 하는데, 그를 보니 아까 나를 추월했던 분이었다. 다른 길로 잘못 들어서 나보다 늦어져 버렸다. 나는 진행자에게 “그가 코스를 잘못 들어서 늦어 졌으니 그를 3위로 하고, 나를 4위로 해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는 여기서 본 대로 해야 합니다”라고 대답을 했다. 그리고는 내가 늙어 보였는지 “나이가 어떻습니까?”라고 하기에 59세라고 대답해 주었다. 그들은 “아! 할아버지네요!”하면서 놀라는 표정이었다. 골인하는 순간에는 감동의 파도가 온 몸을 적실 것 같을 줄 알았는데, 사실은 평소와 같이 무덤덤하였다. 고통과 잠자고 싶은 맘뿐이었다.

본래는 37시간 이내에 들어와야 순위를 인정하는데 약 10시간 빨리 들어왔다. 명단을 보니 일본인도 있었다. 108명이 달리는데 60대는 한국 7명, 일본 1명, 여자는 한국 3명(평균 40세), 일본 9명(평균 50세)이었다. 아마도 어마어마한 고통을 이겨 낸 우리들은, 찔러도 피가 나지 않을 독종의 인간인 것 같았다.

일본인 한 명이 골인을 하는데, 온통 얼굴이 상처투성이다. 그는 달리다가 헛짚어서 어두움 속에서 넘어져서 상처를 입었다. 또 한 사람은 기진맥진해 주위의 사람들의 응원을 받으면서 겨우 골인을 한 후 쓰러져 버렸다. 나는 그것을 보고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눈물이 핑 돌았다.

완주 후에 몸을 씻으러 목욕탕에 갔다. 수돗물을 받으려고 해도 막무가내로 잠이 쏟아져서 대충 물을 끼얹고는 나와 버렸다. 심히 배가 고프다. 식당으로 갔으나 모두 닫혀 있거나 청소 중이었다. 한 곳에 가서 음식이 되느냐고 물으니 해 주겠다고 했다. 식사 후에 밖에 나와서 생각하니 그것은 점심때가 아니고, 아침 청소시간인 것을 알지 못했다. 아침과 점심시간을 혼돈해 버렸기 때문이다.

비행장에 가서 겨우 비행기에 올라타자 깊은 잠에 빠졌다. 뭔가 월컹거려서 눈을 뜨니, 대구에 도착하였다. 왼쪽 발이 퉁퉁 부어있었다. 6주간의 치료가 요하는 상처를 입었다. 내가 정형외과 의사이니까 치료는 자신이 있다. 비행기를 내리는데, 통증으로 겨우겨우 내렸다. 걸을 때마다 고통은 말 할 수없이 크다. 사지와 온몸이 아프고 쓰리다. 장애인들은 얼마나 고통스러울까!도 생각해 봤다.

그 다음날에는 온 몸이 조여 오는 느낌, 즉 몸살 끼가 들었다. 물 끼가 빠져서 바싹 말라드는 느낌이었다. 아마도 사람이 죽어 갈 때도 이러하리라. `천당이나 지옥 등 어디로든, 죽어 갈 때는 이렇게 바싹바싹 몸이 조여서 줄어드는 느낌이 들겠구나` 라는 것을 생각했다.

며칠이 지나니까, 마음 저 깊은 곳에서 뭔가가 무럭무럭 자라는 것을 느꼈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그것은 `용기`라는 것이었다. 자기와의 투쟁에서 극기를 한 증명으로 `마음속의 용기`라는 자격증을 내가 받은 것이다.

마라톤은 타인과의 경쟁이 아니다. 나는 마라톤을 하면서 경쟁의 게임을 단념했다. 게임에는 지고, 이기는 편이 생긴다. 다 같이 이길 수 없다. 장기나 바둑도 뜨지 못할 것 같다. 무엇에든지 이긴다는 것은 지는 사람이 있을 때 가능하다. 이기는 사람은 기쁘겠지만 지는 사람은 어떤 심정이 될까?

200km경기는 평범한 인간인 나에게 과분하다. 이번 도전으로 극기 능력이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었다. 인생의 목표도 그렇다. 한 단계를 높이려면 그만큼 힘이 더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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