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화 유산답사기 6권` 창작과 비평사 刊, 유홍준 지음, 456쪽, 1만6천500원

1993년 제1권 `남도답사 일번지`로 시작된 유홍준 교수(명지대 미술사학과)의`나의 문화유산답사기`는 출간과 동시에 일약 화제가 되면서 전국적인 답사열풍을 몰고 온 인문서 최초의 밀리언셀러다. 제1권이 120만부 판매를 기록한 것을 비롯해 국내편 세 권과 북한편 두 권까지 모두 260만부가량이 판매돼 우리 출판사상 흔치 않은 기록들을 갈아치운 `답사기`가 10년 만에 신간(제6권) `인생도처유상수`(창작과 비평사 펴냄)로 최근 나왔다. 이와 함께 기존의 제1~5권이 개정판으로 새단장해 출간됐다. 수록사진들을 전면 컬러로 교체하고 본문 디자인을 새롭게 하면서, 내용상의 오류를 바로잡고 변화된 환경에 맞도록 정보를 추가하는 등 전면적인 개정작업을 거쳐 신간과 함께 출간된 것이다.

이번에 출간된 신간의 부제는 `인생도처유상수(人生到處有上手)`이다. 옛 시인의 시구 `인간도처유청산(人間到處有靑山)`에서 원용한 이 문구는 세상 곳곳에 존재하는 이름 없는 고수들에 대한 경이로움을 표현한 것이다. 우리는 삶의 도처에서 숨은 고수들과 예기치 않게 만나게 되고 그들을 통해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다. 저자는 책의 서문에서 이렇게 언급한다.

“답사에 연륜이 생기면서 나도 모르게 문득 떠오른 경구는 `인생도처유상수`였다. 하나의 명작이 탄생하는 과정에는 미처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무수한 상수(上手)들의 노력이 있었고, 그것의 가치를 밝혀낸 이들도 내가 따라가기 힘든 상수였으며, 세상이 알아주든 말든 묵묵히 그것을 지키며 살아가는 필부 또한 인생의 상수들이었다. 내가 인생도처유상수라고 느낀 문화유산의 과거와 현재를 액면 그대로 전하면서 답사기를 엮어가면, 굳이 조미료를 치며 요리하거나 멋지게 디자인하지 않아도 현명한 독자들은 알아서 헤아리게 된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오랜 세월 답사를 다니다보니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과 탐구뿐 아니라, 문화유산을 지키고 가꾸며 혹은 남들이 모르는 깨달음을 얻은 평범한 `사람`들에게서 익히 `상수`의 면모를 발견할 수 있었다는 저자는 신간 전반에 걸쳐 그들을 소개하고 그들과의 에피소드를 그려내는 데 공을 들인다. 경복궁 근정전 앞뜰의 박석이 지닌 가치를 발견해낸 경복궁 관리소장, 일반인들은 절대로 알지 못하는 봄나물을 줄줄 꿰고 있는 무량사 사하촌 할머니들, 광주비엔날레 대상 수상작의 의미를 천연덕스럽게 해석해내는 촌로, 노비 출신의 비천한 신분으로 경회루의 대역사를 이뤄낸 박자청 등 학식으로는 따라갈 수 없는 경험과 연륜에서의 상수들을 도처에서 만날 수 있다. 이렇게 답사의 현장에서 만난 고수들과의 에피소드는 우리의 문화유산을 이해하는 데서 두 배의 감동과 재미를 선사한다.

또한 이 책에는 저자가 4년간 문화재청장으로서 재직하면서 직접 경험한 이야기들이 곳곳에 스며 있다. 서울을 대표하는 광장의 필요성을 느끼고 광화문광장 시안을 마련해 정부 부처와 서울시를 바쁘게 오갔던 사연, 문화재 보수에 필요한 박석을 마련하기 위해 박석 채굴 광산을 찾아나섰던 이야기, 광화문 현판글씨에 얽힌 논란과 후일담, 종갓집 맏며느리 간담회 이야기, 개방금지를 능사로 아는 문화재 관리행정을 깨고 경회루 등을 개방한 일화, 전국의 아름다운 돌담길을 선정해 보수하는 과정에서 빚어졌던 에피소드 등이 등장한다. 전권들에서 보여준, 미술사학자로서 문화유산 보존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데서 그치는 입장이 아니라 직접 관리자의 위치에서 경험한 바를 술회하기도 하고 여전히 아쉽고 앞으로 더 개선된 후일을 기약하는 회고의 고백도 담겨 있다.

신간에서는 서울의 상징 `경복궁`과 `광화문`에 얽힌 숨은 이야기, 양민학살로만 알려진 `거창`의 진면목, 사계절 아름다운 절집의 미학을 간직한 `선암사`, 고도 `부여` 구석구석에서 발견하는 백제 미학의 정수, 인문정신이 빛나는 달성의 `도동서원` 등을 만나볼 수 있다. 이 책은 우리에게 친숙한 서울의 대표적인 문화유산, 경복궁과 광화문 이야기로 시작한다. 조선시대 건립돼 화재로 소실되고, 일제강점기를 겪으며 그 자리와 위용을 잃어야 했던 우리 역사의 곡절을 상징하는 광화문이 오늘날의 모습을 되찾기까지의 과정과, 궁궐로서의 품위와 아름다움을 풍성하게 간직하고 있는 경복궁의 구석구석을 돌아보는 의의가 있다.

`부여·논산·보령` 편에서는 저자의 개인적 경험이 듬뿍 밴 에피소드와 부여 근교 구석구석에 감춰진 백제 미학의 흔적들을 꼼꼼하게 좇는 답사의 기록을 만날 수 있다. 저자가 5도2촌의 생활을 시작하며 부여를 제2의 고향으로 삼아 터전을 닦은 사연, 예순의 나이에도 마을 `청년회원`을 못 벗어난 사연, 봄이면 한껏 풍성해지는 산나물 이야기, 1권 `남도답사 일번지`의 무위사 편에 소개되어 일약 명물이 된 개를 연상시키는 대조사의 꽃사슴(해탈이)과 진돗개(복실이) 이야기 등은 단순히 그 지역 문화유산을 소개하거나 해설해주는 데에 그치지 않는 유홍준 특유의 사람 냄새나는 답사기의 일면을 보여준다. 괴이하고 못생긴 모습으로 지역민들에게 안쓰러움의 대상이었던 관촉사 은진미륵의 조형성을 고려시대 불교미술의 양상과 연관지어 적극적으로 해석해내는 저자의 모습은 지역문화에 대한 존중과 애정을 넘어서 그들과 함께 환경과 문화를 공유하는 아름다운 사례이기도 하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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