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품 나는 간접의 세계 벗어나
고달픈 직접의 세계로 나아간
`삶의 시` 이자 `몸의 시`

1998년 `시와반시`신인상으로 등단한 이후 꾸준히 자신의 음역을 넓혀온 유홍준(49) 시인이 세번째 시집 `저녁의 슬하`(창비 펴냄)를 펴냈다.

“독자적 인 발성법으로 해체시와 민중시 사이에 새로운 길 하나를 내고 있다” 고 평가받은 첫시집 `喪家에 모인 구두들`로 한국시인협회 제정 제1회 젊은 시인상을 수상한 데 이어 두번째 시집`나는, 웃는다` 로 제1회 시작문학상을 수상함으로써 한껏 물이 오른 시인은 5년 만에 펴내는 이번 시집에서 한층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감각으로 우리 삶을 더욱 농밀하게 그려낸다. 삶의 의외성과 돌연성을 능숙하게 구사하는 거침없는 시세계가 대담하면서도 경쾌하다.

유홍준의 시는`삶` 자체이다. 자신이 `직접` 보고 듣고 느끼는 비루한 삶의 비애를 고스란히 시 속에 녹여낸다. 그 중심에는 “눈꺼풀을 밀어버린 눈으로 세상을 뚫어지게 바라”(`유리창의 눈꺼풀`) 보는 시인이 있고, “아무데나 픽 꽂아놓아도 사는/버드나무 같”(`버드나무집 女子`)은 이웃과 가족이 있다.

“사람이란 그렇다/사람은 사람을 쬐어야지만 산다/독거가 어려운 것은 바로 이 때문, 사람이 사람을 쬘 수 없기 때문/그래서 오랫동안 사람을 쬐지 않으면 그 사람의 손등에 검버섯이 핀다 얼굴에 저승꽃이 핀다//(…)//냄새가 난다, 삭아/허름한 대문간에/눈가가 짓물러진 할머니 한 사람 지팡이 내려놓고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 바라보고 있다 깊고 먼 눈빛으로 사람을 쬐고 있다”(`사람을 쬐다`)

비스듬한 시선으로 고단한 삶의 풍경을 담아내는 시인은 자신을 “사람의 얼굴을 한 까마귀”(`나무까마귀`), “웃통을 벗어던지고 자는” 고기(`도축장 옆 아침`), “인간의 머리를 달고 온몸을 뒤틀어”대는 지렁이(`붕어낚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몽상가”(`연잎 위에 아기를`)라고 일컬으며 자학을 서슴지 않는다. 하지만 “마음이 참, 지랄 같”기는 해도 일흔네살에 자궁을 들어낸 어머니(`어머니의 자궁을 보다`)나 “분절의 말들”이 굴러다니는 곳에서 “아무런 이유도 없이, 이토록 오래, 모여, 밥 같이 먹고 잠 같이 자”(`폐쇄병동에 관한 기록`)고 “목줄에 묶인 개처럼//링거줄에 묶여 화장실 다녀오는”(`오후의 병문안`) 폐쇄병동의 환자들을 바라보는 시인의 눈길은 애잔하기 그지없다.

“내가 입던 옷을 입고 돌아다니는/백명의 정신병자들,/나는 흠칫 놀라 움츠리곤 한다/아니다 아니다 그게 아니다 너무나 친숙하고 너무나 익숙해서 나는 웃는다/정신병원 복도를 걸어다니는 백명의 나에게/농담을 건네고 악수를 하고/포옹을 한다”(`내 옷을 입고 돌아다니는 자들`부분)

뭇 생명을 대하는 시인의 눈길 또한 사람에 대한 애정만큼이나 애틋하다. “성대가 잘려나간” 개(`저녁`), “못 박는 총으로/쏘아//머리에 못이 박힌” 고양이(`네일 건`), 인공수정을 당하는 “멍청하고 슬픈 소의 눈망울”(`인공수정`)을 바라보는 시인은 “쓸모만을 향해 질주하는 세계의 불모성과 폭력성”(손택수, `추천사`)을 드러내면서 동시에 위로한다.

“겨드랑이까지 오는 긴 일회용 비닐장갑을 끼고/애액 대신 비눗물을 묻히고/수의사가/어딘지 음탕하고 쓸쓸해 보이는 수의사가/꼬리 밑 음부 속으로 긴 팔 하나를 전부 밀어넣는다//나는 본다 멍청하고 슬픈 소의 눈망울을/더러운 소똥 무더기와/이글거리는 태양과/꿈쩍도 않고/성기가 된 수의사의 팔 하나를 묵묵히 다 받아내는 소의 눈망울을//(…)(`인공수정`부분)

유홍준의 시는 “대담하고 활달하고 개구지고 거침없다.”(김언희, `발문`) 그의 시에서 보이는 가벼움과 수월성은 “용암의 뜨거움을 거치지 않고는 이룰 수 없는 가벼움, 제 안의 모든 것을 태워버리고 난 다음에야 도달하게 되는 무서운 가벼움”이다. 관념적인 언어로 치장된 사유보다는 의외의 발상과 감각적인 이미지로 삶의 전경을 찍어내는 그의 시는 남다른 감동을 자아낸다.

“고인의 슬하에는/무엇이 있나 고인의 슬하에는/고인이 있나 저녁이 있나/저녁의 슬하에는 무엇이 있나/저 외로운/지붕의 슬하에는/말더듬이가 있나 절름발이가 있나/저 어미새의 슬하에는/수컷이 있나 암컷이 있나/가만히/돌을 두드리며 묻는 밤이여/가만히 차가운 쇠붙이에 살을 대며 묻는 밤이여/이 차가운 쇠붙이의 슬하에는 무엇이 있나/이 차가운 이슬의 슬하에는/무엇이 있나/이 어긋난/뼈의 슬하에는 무엇이 있나//이 물렁한 살의 슬하에는 구더기, 구더기, 구더기가 살고 있나”(`슬하` 전문)

이전 시집에서 불행한 가족서사와 죽음의 시학을 천착했던 시인은 이제 “지루하고 하품이 나”는 `간접`의 세계가 아닌 “힘들고 고달”프긴 하지만 “재밌고 즐거운” `직접`의 세계로 성큼성큼 나아가고 있다(`시인의 말`). 그의 시는 머릿속에서 관념적으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몸 가는 데”로 가는 `삶의 시`이자 `몸의 시`이다. 이제 그 `몸`이 어디로 갈지 자못 궁금하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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