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 그 옆 사람` 실천문학사 刊, 이만희 지음, 320쪽, 1만1천원

등단 25년의 중견 소설가 이남희가 다섯 번째 소설집 `친구와 그 옆 사람`(실천문학사 펴냄)을 펴냈다.

이남희는 1990년대 대표적인 여성 작가 중 한 사람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사십 세`의 작가로 기억하고 있지만 그녀가 등단 이후 작품에 담아온 한결 같은 키워드는 여성, 몸, 사랑, 그리고 관계로 귀결된다.

심리학에 기초한 자기 치유의 글쓰기에 관한 강의를 꾸준히 해오고 있는 작가의 상처받은 인간, 삶, 관계에 대한 깊고 따뜻한 애도의 마음이 7편의 작품에 오롯이 담겨 있다.

표제작이자 중편소설인 `친구와 그 옆 사람`과 여섯 편의 단편소설에서 공통적으로 엿보이는 것은 허무에 가까운 상실감이다.

`친구와 그 옆 사람`의 영우는 연하의 연인이었던 김환에게 쓰라린 배신을 당하고, `낯선 이들의 집`의 정님과 `빛의 제국`의 그녀 그리고 `세 번째 여자`의 은정은 모두 이혼녀다. `거미집`의 주인공은 어린 시절 성추행을 당한 후 아버지에게 버림받았다. 이 같은 개인적 상실이 문제적인 것은 시대적 차원으로 이어지기 때문이기도 한데, 특히 `친구와 그 옆 사람`은 이남희의 소설 세계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1980년대를 지배했던 이념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이었던 어떤 열망, 혹은 `이념적 대타자`를 상실한 1990년이 배경인 이 작품은 `살아남은 자들`, 그러나 마음 깊은 곳에 가라앉아 있는 상실감에 허덕이는 자들이 주요 인물로 등장한다.

이들은 그 드러내기 곤란(!)한 상실감을 화투를 치는 것으로 채운다.

주인공 영우의 시각으로 대변되는 이들의 상실감의 깊이는 `시커멓게 죽은 얼굴을 하고 화투장을 들여다보는 핏발 선 눈`과 “갓난아기의 눈이 그렇듯, 새파랗고 맑고 선명했”던 눈으로 대비되면서 “1990년”의 피폐한 현실을 압축해서 보여준다.

운동권이었던 동료 부부의 이혼이나 밀란 쿤데라의 소설 역시 급작스럽게 달라져버린 시대를 의미하는 기호들이라고 할 수 있다. 남자 주인공인 김환의 입을 빌려 작가는 인생은 결국 “한낱 농담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과 “위대한 휴머니즘에서 촉발된 공산주의가 역사 속에 구현되는 과정에서” “괴물스럽게 변해갔”다고 말한다.

한때 민주화를 위해 싸웠던 이들이 문까지 잠궈둔 채 벌이는 노름판은 작가의 말을 통해 밝히고 있듯 스티븐 킹의 소설 `내 마음의 아틀란티스`가 모티프이다.

월남전 참전에 대한 공포를 잊기 위해 포커에 열중하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보며 작가는 1990년, 젊은 영혼들이 처해 있던 상실의 현장을 떠올렸다고 적었다.

이 같은 상실감에 허덕이는 인물들의 피폐해진 정서는 사막의 이미지로 빈번하게 형상화되고 있다. 이를테면 `친구와 그 옆 사람`에서 김환의 외도 현장을 목격한 영우의 귓속에서는 “수증기를 빨아들인 기압대가 통과해 가버리고 거대한 사막만 남았어”라는 소리만 울릴 뿐이고 `남자와 여자`에서 독신녀 이은정은 “사막을 헤매다 모래구덩이에 빠진 꿈”을 꾼다. `빛의 제국`의 마지막은 “눈앞에 노랗게 메마른 사막이 펼쳐져 있는 것만 같다. 그림자 한 뼘, 물 한 방울 없는 사막. 그녀는 천천히 빛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수분이 증발하듯 그 모습이 서서히 졸아든다”로 끝난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상실감에 허덕이는 이들을 위한 작가의 선택에 주목하게 된다.

오랫동안 심리학에 기초한 `치유의 글쓰기`를 연구해온 작가의 혜안이 빛을 발하는 부분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것은 “서로를 향한 연대의 부드러운 몸짓”, 바로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그 옆 사람” 나아가 `세계`에 가닿는 “애도”의 자세이다.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이경재는 이를 두고 “우리는 이 시대의 상처를 어루만질 수 있는 또 한 명의 멘토를 가지게 되었다”고 극찬하고 있는데 이 소설집을 본 독자들이라면 누구라도 공감하지 않을까 싶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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