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실측당시 양진당<위>, 2004년 대문채 복원 후의 양진당 <아래>
1975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85호로 지정된 상주시 낙동면 승곡리에 위치한 `상주 양진당(尙州 養眞堂)`은 풍양 조씨 장천파 문중 소유로 2008년 7월 보물 제1568호로 승격 지정된 조선시대 중기의 건물이다. 1808년 중수 당시 남긴 중수기에 의하면 양진당은 서애 유성룡의 제자이며 퇴계학파의 맥을 이어받은 검간(黔澗) 조정(趙靖, 1666~1636)이 1626년 처가인 안동군 임하면 천천동에 있던 건물을 해체해 배편으로 낙동강 건너 현 위치에 이건한 것이라고 한다. 1981년 해체당시 종도리에서 발견된 상량문을 통해서 인조 4년(1626)에 착공하여 3년 후인 1628년에 완공했고, 1794년 쇠락한 집을 다시 고치기 위해 14년 간 준비한 후 순조 7년(1807)에 중수했음을 알 수 있다.

실측조사 당시만 하더라도 상주 양진당은 거의 허물어지기 직전의 폐가였었다. 그 당시는 건물의 정침(正寢)만 남아 있었고 상주지역에서는 보기 드문 `ㄷ자형`의 양통집(겹집) 평면구성이었다. 특히, 정침 툇마루 상부는 겹처마로 처리하고 나머지는 홑처마로 꾸민 수법이나 서까래 끝을 네모지게 다듬어 부연(附椽)과 같은 모양을 취하게 한 것은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치목(治木) 수법이다.

양진당의 평면구성은 정면 9칸, 측면 7칸 규모의 `口`자형 평면을 한 고상식(高床式) 구조인데 정침 퇴칸 전면에 세운 6개의 높은 기둥을 보면 상하층 하나의 기둥을 세운 통재를 사용하였는데 특이하게도 하나의 기둥에 마루 하부는 방형(4각형)으로 치목하고 상부는 원형으로 다듬었다. 게다가 고상식 건물 구조임에도 불구하고 주생활 공간의 바닥을 지면에서 2m정도 높게 해 난방을 위한 구들을 설치한 것은 조선시대 주거건축에서는 보기 드문 귀중한 사례다.

최근 양진당의 대문채를 복원하여 지금은 건물 평면이 `口`자 형태를 이루고 있지만 문화재 지정 당시는 대문채가 없는 `ㄷ`자 형의 집이었다. 실측조사당시 없었던 전면의 대문채는 1966년 대홍수로 유실되었던 것을 2004년 12월 발굴조사를 통해 다시 복원한 것이다. 또한 정침 좌우 전면에 연접해 설치한 익사는 2층 구조로 되어 있다. 좌측 익사 2층은 안방에서 연결하여 고방으로 꾸며놓았고, 우측 익사도 끝부분 두 칸을 고방으로 꾸몄다. 고방의 규모가 다른 집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것이 당시 가문의 위세를 느끼게 한다.

이 건물은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고상형(高床形) 주거에 저상형(低床形) 구들이 절충된 점이 특이하고, 평지에 지은 주거건축이면서도 고상구조로 꾸민 것은 건물이 위치한 곳이 하천에 가까워 만일의 경우 침수에 대비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풍양 조씨 장천파 문중에서 매년 여름 문중의 청소년들을 이곳에 모아 문중 교육을 하는 것 또한 이채로웠다.

/영남이공대 교수

문화재청 문화재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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