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영 한나라당 환경노동위 수석전문위원

지난 27일 오전 국회의원 본관 2층에서 경북 성주출신의 이완영(53) 한나라당 환경노동위원회 수석전문위원(차관보급)을 만났다.

이 수석전문위원은 이날 오전내내 최근 새로 선출된 한국노총위원장 취임에 따른 한나라당과 정부와의 관계 전망 등에 대한 분석보고서 준비에 분주했다. 보고서 작성후 당 지도부와의 업무협의를 마친 이 수석전문위원이 인터뷰를 위해 사무실을 찾은 기자를 반갑게 맞았다. 성주군 수륜면이 고향인 이 위원은 수륜초등학교를 거쳐 성주중학교를 다니다 대구 경상중학교로 전학해 졸업했고, 대륜고등학교와 영남대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만26세 행정고시 합격·노동부서 첫 공직 시작

“고향발전에 도움되면 무슨 일이든 거들 것”

그는 서울대 환경대학원 2학년에 재학중이던 1982년 제26회 행정고등고시에 합격해 공직에 입문했고, 주로 서울에서 노동부에 근무한 노동분야 전문가다. 그래서 별명도 `노정통`이다.

노동부 경력을 보면 별명의 유래가 이해된다. 대구남부지청장 및 부산북부지청장 등 지청장을 지냈고, 노동부에 들어가 노사조정과장, 임금복지과장, 산재보험과장, 여성정책과장 등 험난하기로 유명한 부서에서 현장경험을 쌓았다. 그 이후에도 대통령직속 노사관계 개혁위원회 운영과장을 지냈고, 고위공무원단에 진입하면서 노동부 최저임금위원회 상임위원과 서울지방노동위원회 사무국장, 대구지방노동청장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

또 이 위원의 집안은 3대째공무원이다. 그래서 성주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유명하다. 성산 이씨 종손이었던 부친인 고 이종만씨는 성주군청과 대구시청에서 근무했고, 조부인 고 이성기옹은 성주군 수륜면장을 지냈다. 이 위원의 집안에서 수륜중학교를 설립했고, 수륜농협 설립에도 크게 기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수석전문위원의 고향에 대한 사랑도 유별나다. 그는 10년전 서울에서 성주출신 공무원 모임이란 뜻에서 `성공회`란 이름으로 모임을 만들었다. 고향발전을 위한 관심과 애정의 발로에서다. 또 최근에는 대구지역 출신 재계·관계·학계인사들의 모임인 `달구벌희망포럼`을 창립해 수석부회장직을 맡고있다. 포럼에는 80여명의 회원이 있는 데, 대구·경북지역 발전을 위해 중앙에 있는 사람들이 지원할 것은 지원하자는 취지로 모였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이런 모임을 더 많이 만들어 지역발전을 위한 일에 도움이 되고 싶어한다.

-어릴 때부터 공직을 하고싶었나.

재능이나 소질은 공무원쪽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나는 고등학교 다닐때까지 문학을 하려고 생각했다. 산문이나 시를 쓰는 걸 좋아했고, 상도 많이 받았다. 그 길로 가고싶었지만, 당시 공무원이던 부친이 간곡히 권해 공무원의 길로 접어들었다. 내가 5남2녀 가운데 여섯째인 데, 위의 세분 형님들이 모두 공직에 나가지 않았기에 나라도 부친의 바램을 들어드려야 겠다고 생각해 고등학교때 마음을 바꿔 행정학과에 진학했다.

-학교에 다닐 때는 어땠나.

문학을 좋아하다 보니 취미활동을 많이 하는 편이었다. 대학에 가서도 서클활동도 많이 했다. 1학년때부터 고시공부를 하긴 했지만 그리 열심히 하지는 않았다. 3학년때부터 본격적으로 공부해서 1982년 서울대 환경대학원 2학년에 재학중인 만 26세에 합격했으니 공직입문은 다소 빠른 편이었다.

-석사학위는 서울대 환경대학원에서 받았는 데, 어떻게 된 것인가.

대학 은사님이 대학원에 이왕 진학하려면 사람들이 많이몰리는 행정대학원보다는 환경대학원에서 공부하는 게 유리할 것이란 조언을 해주셨다. 그래서 서울대 환경대학원에 진학했는 데, 도시행정과 도시계획 같은 분야를 공부한 것이 좋은 경험과 공부가 됐다고 생각한다.

-박사학위까지 했으니, 공부에 대한 욕심도 많은 것 같다.

공직생활을 하면서도 늘 공부하려고 애쓴 게 사실이다. 항공대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영남대, 대구대 겸임교수를 지냈다. 2008년부터는 지역언론에 시론을 쓰면서 직업의 소중함과 자녀 교육, 올바른 노사관계 등에 대한 얘기도 글로 많이 썼다.

-공직생활의 대부분이 노동부였는 데, 입법부 근무는 처음인 것으로 아는 데, 근무소감은.

입법부에서의 첫 경험이지만 행정부에서의 경험이 밑받침되는 것 같다. 무엇보다 정부와 여당의 가교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하기위해 노력하고 있다. 특히 대구경북 경제 발전을 위해 고민하고, 고향 기업 지원, 실업 해소를 위해 애쓰겠다.

-한나라당 환경노동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이란 직함이 무슨 일을 하는 직위인가.

◆노동부에서 여당인 한나라당에 파견된 고위공무원으로서당정협의를 준비해 노동부와 여당과의 소통을 돕는 것이 가장 큰 임무다. 또 노동관련 법안을 만들 때나 예산안 심사때 당과 정부와의 의견교환, 조율 등을 하는 것이 주요 임무다.

-요즘 친구들은 주로 어떤 분들을 만나나.

공직생활을 하다보면 같은 공직에 있는 친구들을 주로 만나게 된다. 행시동기인 여희광 대구시 기획관리실장 같은 친구들이나 고교 동기들을 주로 만난다.

-노동부에서 오랫동안 근무하면서 가장 보람있게 생각하는 일은.

노동부에서 약 25년 근무를 했는 데, 뭐니뭐니해도 지난 2008년도 대구청장 재직때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2007년도 당시 대구시 수성구 동대구로에 있는 대구지방노동청앞에 `대구노사화합의 탑`을 건립했는 데, 한 해 동안 노사분규가 한 건도 없었던 일을 기념한 것이었다. 대구가 전국에서 유일한 케이스여서 매우 큰 보람을 느꼈다. 그 이전까지는 영남대병원 파업이나 델파이 문제로 대구지역에서도 노사문제가 시끄러웠지만 전 직원이 적극적으로 중재하고 조정하면서 잘 마무리가 됐던 것 같다. 또`키우자 기업, 늘리자 고용`이란 노동청 슬로건을 만들었던 일도 보람있는 일이었다.

-대구지방노동청에 근무할 때 특별히 기억나는 일이 있나.

언론과 협조해 좋은 결과를 가져왔던 일인 데, 경제단체나 중기청 등에 기업 애로사항을 컨설팅해주고, 정부지원제도를 많이 알려주는 프로그램을 만들면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대구KBS총국에 협조를 요청해서 대구·경북지역의 중소기업을 소개하는 프로를 만들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대구·경북지역 중소기업이 많이 알려지고, 매출이 늘어나면 고용도 늘 것이란 생각에 시작했는 데,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를 받았다.

-서울서 근무하다가 고향에 근무하면 감회가 남달랐을 것으로 생각되는 데.

다른 지역에 기관장으로 가서 근무하는 것과 고향지역에서 근무하는 것은 아무래도 마음가짐이 다르게 된다. 다른 지역에 발령받아가면 아무래도 생소한 지역이고, 분위기도 잘 모르는 만큼 몸을 많이 사리게 마련이다. 그러나 고향 기관장으로 근무하게 되면 지인들도 많고, 지역현안이나 현안에 대한 여론, 분위기를 쉽게 알기 때문에 적극적인 해법을 내놓기가 쉽다고 생각한다.

-공직생활을 하면서 가장 아쉽고 안타깝게 생각하는 일이 있다면

공직에 있다보면 바쁜 공무때문에 지인들을 자주 만나기가 어렵다. 비록 서울에서 고교 재경동창회 모임이나 대학교 동문모임인 천마포럼 등에 나가곤 하지만 기본적으로 자주 만나기는 어렵다.

-향후 꼭 이루고 싶은 일이나 꿈이 있다면

앞서 말한 것처럼 고향의 발전을 위해서 더 많은 관심을 갖고, 노력을 하는 것이 꿈이다. 가까운 미래를 얘기한다면 앞으로 수년후 공직을 마치고 나면 고향에 내려가 후학을 기르는 일을 하고 싶다. 공부를 손에서 놓지 않는 이유도 그런 이유에서인지도 모른다.

-고향분들에게 인사 한 마디.

성주는 농촌지역인 만큼 직장인들은 맡은 바 직장에서 충실히 일하면 되지만, 대구의 경우 대기업이 없고, 중소기업이 주를 이루고 있어서 참 어려운 것 같다. 대구 경제가 살아나야 되는 데, 안타까울 뿐이다. 고향발전에 도움되는 일이면 무슨 일이든 거들 작정이다.

/김진호기자 kjh@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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