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작가 파스칼 키냐르 .... `옛날에 대하여`·`심연들` 동시 출간

우리에게 `은밀한 생`의 저자로 널리 알려진, 생존하는 현대 프랑스 문학사의 거목 파스칼 키냐르의 `옛날에 대하여`(문학과 지성사)와 `심연들`(문학과 지성사)이 출간됐다.

이 두 책은 키냐르가 “열 권이 될지, 스무 권이 될지 모르지만 이 `마지막 왕국` 속에서 나는 죽어가게 될 것”이라고 소명을 밝힌 `마지막 왕국` 연작 가운데 두번째, 세번째 권이다.

파스칼 키냐르에 대해 말하는 것은 어렵다. 첼로를 연주하던 음악가이며, 베스트셀러 작가이고, 시나리오 작가(영화`세상의 모든 아침`의 원작자이다), 고대 그리스 시의 번역가, 라틴어와 그리스어에 능통하고 실존주의와 구조주의의 물결을 통과한 철학자라는 작가 자신의 복잡하고 화려한 이력 때문만이 아니다. 그의 글이 “농밀하나 잘 달아나는 수은” 같기 때문이다.

9개의 언어 자유자재로 구사

연작 `마지막 왕국` 중 2·3권

시간·존재 기원에 대한 탐구

표류하는 현재에 대한 성찰

보아도 보이지 않는 것, 잡아도 잡히지 않는 것을 슬쩍 기동상(起動狀)으로만 나타내기 때문이다. 상(象)은 있으나 형(形)은 만들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비워두고, 다 말하지 않고, 아리송하게, 아득하게. 황홀하게 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통적인 장르를 파괴하고 라틴어를 비롯한 9개의 다양한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면서, 가장 독창적인 담론을 통해 삶의 근원을 향한 탐색을 집요하게 펼치고 있는 그의 작품에서 우리는 그의 사유의 깊이에 탄복하고, 언어의 아름다움에 매혹된다.

키냐르의 `마지막 왕국` 시리즈는 2005년 4권 `천상적인 것`, 5권 `더러운 것`이 나왔고, 2009년 6권 `조용한 나룻배`가 나왔다. 앞으로도 이 시리즈는 계속될 계획이다.

“나는 욕망 때문에, 습관적으로, 의도적으로, 혹은 직업 삼아 글을 쓰는 게 아니다. 나는 생존을 위해 글을 썼다. 내가 글을 썼던 이유는 글만이 침묵을 지키며 말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었기 때문이다.”-파스칼 키냐르

키냐르는 작품에서 아주 다양한 언어를 사용한다. 키냐르는 어원을 밝히기 위해 외래어(특히 라틴어와 그리스어 외에도 산스크리트어, 헤브라이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중국어, 일본어, 그것도 모자라서 신조어를 만들어 쓴다)를 섞어 쓰고 있다. 이는 언어의 불완전성을 인지하고 언어를 부정하면서 글쓰기를 직업으로 삼은 작가가 자신의 방식으로 대처하는 언어관이 반영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키냐르에게 언어는 우선 자연과 상치되는 것이며, 습득된 문화, 인위적 가공이다. 언어와 자연 사이에 질러진 가름막을 계속해서 환기하기, 언어를 부정하기. 이것이 언어를 업으로 하는 키냐르의 허패이자 진패이다.

근원의 문제에 강박적일 정도로 천착하며 과거, 태고로의 역행을 주행하는 키냐르는 우리에게 익숙한 `시간` 개념(과거-현재-미래로 이어지는 일방향적 시간 개념)과는 아주 다른 형태로 시간 개념을 재구축한다. 그리고 그는 기원(起源)의 자리에 `옛날`을 설정한다. 많은 테마들 중에서도 시간의 문제가 키냐르에게서 가장 중요하다 할 수 있는데, 작가가 작심하고 본격적으로 옛날에 대한 정의(定議)를 시도한 담론인 이 책은 키냐르 세계의 지침서라 할 수 있다.

키냐르에 따르면 시간은 두 가지만 존재한다. `옛날`과 옛날 이후인 `과거`. `과거-현재-미래`라는 일정한 방향성을 지닌 시간 개념은 사회가 우리를 안심시키려고 고안해낸 속임수에 불과하다는 것이 키냐르의 생각이다. 그가 제시하는 진짜 시간이란 방향성 없이 양끝만 있는, 흐르지 않고 제자리에서 돌며(예를 들면, 계절의 순환) 수직으로 쌓여가는 그런 시간이다. 옛날 이후에는 오직 누가적(加的)인 과거가 있을 뿐이다. 진짜 시간에 미래는 물론 포함되지 않으며, 현재마저도 과거의 일부로서 과거에 편입된다. “과거란 현재라는 눈(目)을 가진 거대한 육체”(`옛날에 대하여`22쪽)라는 것이다.

키냐르의 시간성에 대한 고찰은 오늘날, 뿌리 없이 표류하는, 현재, 현실에 대해 성찰하는 깊은 사색이라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과거의 속성, 과거라는 것에 대해 말하고 싶어 쓴 것이 `옛날에 관하여`라면, 여기에 또 다른 이유로” 그는 세번째 권 `심연`을 썼다고 한다.

키냐르에 따르면 오늘날 우리는 더 큰 규모의 독재주의에 살고 있다. 과거는 우리 사회를 망보고 있다가 적당한 기회를 틈타 복귀한다. 사회는 더 나은 방향으로 진보하는 것이 아니라 돌아오면 안 될 것 같은 끔찍한 과거를 반복하는 것이다.

키냐르의 방주에 실어야 할 것은 성(聖) 모독적인, 무신론적인, 더러운, 뜨듯한, 축축한 음지의 어떤 것들이다. 동굴, 자궁, 어둡고 습한 곳 속에서만 싹을 틔우는 씨앗 같은 것. 역사가들이 전승하지 않는 것, 길을 걸으나 자취를 남기지 않는 것, 보이지 않는 것, 보잘것없는 것, 드문 것, 미세한 것, 티끌 같은 것, 무어라 이름 붙일 수 없는 무형지상의 것이나 황홀한 것, 야(野)한 것, 생(生)한 것, 그윽하고 어두운 것이나 지극히 정(精)하고 정(靜)한 정수, 진수이다.

또한 키냐르는 작품의 형식에서도 자신의 이러한 무정형적인, 무국적적인 특징을 잘 드러낸다. 그의 글은 소설인지, 철학 에세이인지, 혹은 시인지 산문인지 알 수 없는 탈장르적인 독특한 형식이다. 키냐르의 글을 둘러싸고 제기되는 비장르, 탈장르적 글쓰기 논쟁의 본질은 그가 추구하는 문학적 스타일에 있지 않다. 키냐르에게 그것은 필연이고 순리이다. 키냐르에게 장르는 줄, 계통, 소속, 나라가 발급한 신분증, 영업을 위해 내미는 명함이다. 탄생과 함께 성과 이름이 등록되고, 소속이 정해지며, 국적을 국어를 획득한다. 이 모든 사후적, 사회적 획득물을 찢는 것, 문학가가 하는 일은 바로 그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심연들` 류재화 옮김, 문학과 지성사 刊, 308쪽, 1만2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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