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이경희 첫 작품집 `도베르는 개다` 실천문학사 펴냄 刊, 256페이지, 1만1천원

`도베르는 개다`는 2008년 실천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한 이경희의 첫 작품집으로, 일곱 편의 중단편소설을 묶었다. 등단작 `도망`은 단편소설의 필요충분조건을 갖춘, 삶과 현실의 눅진한 맛을 녹여내고 있는 “정통소설”이라 평가받은 바 있다. 그 기대에 걸맞게 특유의 정직성을 담보한 문장들로 이 시대 필부필부의 `허기`를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때로는 개, 때로는 치매 노인, 때로는 메기의 모습을 한 적(敵)과의 동행 길에 소설 속 화자들은 질문을 던진다. 과연, 타인의 징그러운 시선으로부터 도망가는 것은 가능한 일일까?

표제작`도베르는 개다`의 주인공은 먹어도 먹어도 허기를 채우지 못하는 거구의 여자이다. 취업면접을 볼 때마다 자기관리에 실패한 게 아니냐는 노골적인 비난을 받아온 그녀는 살 빼는 약값을 벌기 위해 부잣집 개의 보모가 된다. 여주인의 끔찍한 사랑을 받는 늙은 개 `도베르`는 께름칙한 마초의 시선을 뿜어내는 듯한데, 생계를 위해 치욕을 감수하면서 개와 인간의 위계가 전도된 질서 안에서 몸을 수그려야 할까? 아니면 도망쳐야 할까? 이때 바로, 역전의 스위치에 불이 들어온다. 바로 그 개의 주인이 될 기회가 찾아오는 것이다.

사람과 개의 지위고하가 뒤바뀐 상황에서 관계의 전환점을 만들어내듯, 이경희의 소설들은 자주 `역전`의 모티프를 취한다.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시점`의 역전으로, 주인공들은 대립항의 시선으로 자신을 되비춰보곤 한다. 즉 `도망`의 치매 노인, `푸른 권태`의 메기, `도베르는 개다` 등의 처치 곤란한 존재들이 문득 곤궁한 처지의 주인공들과 오버랩되는 기묘한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이훈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 기이한 괴물들은 “자신 안에 도사린” 존재에 다름 아니다.

말하자면, 편편의 소설들은 우리의 생을 억누르는 타인의 시선이 곧 `자아`라는 괴물임을 이해해가는, 타자가 아닌 나의 존재를 다스려가는 도정 속에서 펼쳐지고 있다. 도망과 탈주, 해방을 꿈꾸던 이경희의 인물들은 그렇게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하지만 그것은 “도베르는 개다”라는 당연한 명제를 반복하는 기계적인 회귀가 아니다. 그것은 개에게서 멸시를 받는 편집증적 세계, 즉 `물구나무선 세계`를 돌이킬 수 있다고 믿는 자의 간절한 주문이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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