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장미의 이름`의 저자이자`미의 역사`, `추의 역사`에서 색다른 미학의 세계를 펼쳐 보인 미학자 움베르토 에코가 이번엔 다소 경악스러운 책을 들고 나왔다.

인류 문화사에서 가장 기이하면서도 도무지 그 끝을 가늠조차 할 수 없는 무언가의`목록`들을 제시하며 이것들이야말로 그 시대의 세계관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고 말하는 움베르토 에코. `궁극의 리스트`(열린책들 간)에서 195장의 삽화와 호메로스, 단테, 괴테, 조이스, 프루스트 등 대가들의 작품 80여 종 속에서 펼쳐지는 각종 목록에서 보이는 에코의 치밀함은`목록`이라는 소재가 주는 낯섦과 뒤섞여 당황스러울 정도이다. 한마디로 이 책은 움베르토 에코가 목록에 바치는 찬사이자 목록을 위한 목록, 그러니까 이 책 자체가 에코의 목록인 셈이다.

그렇다면 왜`목록`인가? 우리는 목록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목록은 우리 일상생활 곳곳에 넘쳐나고 있다. 일정표, 쇼핑 목록, 위시 리스트, 서지 목록, 영화 목록, 각종 카탈로그, 전화번호부, 식당 메뉴판, 그리고 인터넷 등 사람들은 다양한 목적으로 각자의 목록을 작성해 나가고 있다. 그리고 그 다양한 목적 안에는 저마다의`욕망`이 숨어 있다. 물론 목록은 현대인만이 누리고 있는 문명의 이기도, 욕망의 해방구도 아니다.

“실제로도, 또 우리가 백과사전과 관련해 보았듯이,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와 중세 시대 목록들은 거의 임시변통을 위한`편법`과 다름없으며, 그 표면 바로 밑에서 우리는 있을 수 있는 질서에 윤곽을 부여하고 사물들에 형태를 부여하고자 하는 욕망을 항상 감지하곤 한다. 그러나 근대 세계에서 목록은`변형`에 대한 취향으로 받아들여진다.” (본문 245쪽)

에코가 지적한대로 목록은 인류의 모든 역사에 걸쳐 존재했으며, 고대와 중세 그리고 근대 세계에서 인간이 목록속에 숨겨 놓은 욕망은 각 시대의 시간적 격차만큼이나 그 모양새가 서로 다르다. 에코는 시대와 예술 장르를 넘나들며 이 욕망의 편린을 수집했고 책안에 그것들을 목록화했다. 에코의 욕망은 수집한 그 목록들을 통해 인류가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고 그것을 어떤 식으로 표현해 왔는지 엿보고 싶은 것이었다. 한편으로는 회화 속에 담긴 `시각적 목록`을 펼쳐 보이며 프레임 안에 갇혀 있던 우리의 시각을 넓혀 프레임의 물리적 한계너머에 있는 형태, 그 너머에서도 계속될`기타 등등`의 세계를 상상하도록 권유한다.

이 책은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류가 쌓아 온 목록의 장대한 역사를 뒤적인다. 서양 문화사에서 우리는 성인들의 목록, 천사와 악마의 이름들, 그로테스크한 피조물에 관한 설명들, 약용 식물의 목록이나 수많은 보물들의 목록을 보게 된다. 그런 목록에는 도서관 장서 카탈로그 같은 유한한 항목의 실용적 목록들도 있지만, 헤아릴 수 없는 거대함을 표현하려는 의도를 가진, 따라서 무한함의 현기증을 일으키는 목록들도 있다. 목록이 갖는 무한성은 결코 우연히 나타난 게 아니다.

“문화란 그 자신의 정체성을 확신할 때에는 닫혀 있고 안정된 형태를 선호하는 반면, 뒤죽박죽 쌓여 있는 불명료한 현상들과 마주치면 목록을 만들어 나가기 시작한다”. (본문 15쪽)

목록의 미학은 미술사와 문학사 전반에 걸쳐 흐른다. 그것은 고대의 동물 우화집에서, 거룩한 천사들의 무리에서, 또는 16세기 박물학 컬렉션에서 발견된다. 뿐만 아니라 좀 더 간접적으로는 호메로스부터 조이스와 핀천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고딕식 대성당의 보물에서부터 보스의 환상적 풍경화와 호기심의 창고를 거쳐, 20세기의 앤디 워홀과 대미언 허스트에게서도 사용되고 있다.

아름다운 삽화들이 즐비한 이 책에서 움베르토 에코는 목록의 개념이 시대를 거치면서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그리고 시기마다 목록이 어떻게 시대정신을 표현했는지 체계적으로 분석한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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