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신객원 논설위원 로타리코리아 차기위원장
조선시대의 거유 퇴계 이황 선생은 처신만큼 입성이 단정 했다고 하며 아무리 더운 여름날에도 입성을 흐트리지 않았다고 한다. 조선시대를 살았던 선비들의 옷차림은 늘 깨끗하고 단정한 모습이었다.

공자도 옷차림에 남달리 많은 신경을 썼던 것으로 유명하다. 셰익스피어는 햄릿의 시종이자 오피리어의 아버지 폴로니우스의 입을 빌려 길 떠나는 아들에게 “형편 닿는 한 잘 차려 입으라”고 당부했다. 동서양을 가릴 것 없이 옷은 시대를 표현하는 언어가 돼버렸다.

공항검색대를 통과할 때도 옷이 허름하면 괜히 걸릴 확률이 높다. “옷이 날개” “입은 거지”라는 말이 고전이 된지가 오래며 남성보다 여성이 훨씬 더하다. 여성이 입는 옷은 신체에 쓰인 언어와 같기 때문이다. 대충차려입고 백화점 명품가게에 들렸다간 종업원으로부터 푸대접을 받았던 기억들을 한 두 번은 지니고 있을 것이다.

1·2차 대전이 여성패션에 획기적인 변화를 몰고 오고 텔레비전보급이 기름을 부었다. 정장차림과 1920년대 샤넬이 내놓은 무릎길이 스커트는 여성의 걸음걸이 폭을 달리하게 했고 여성의 사회진출이 시작됐던 시기와도 연관 관계를 가진다.

신체선을 드러내지 않았던 우리와는 달리 1935년 브래지어와 숏 팬티로 구성된 수영복의 등장은 또 다른 복장 혁명이다. 40년대에 등장한 만화 캐릭터 `원더우먼`은 빨간 탱크톱과 핫팬츠 차림으로 세상에 걸어 나왔다.

이는 아마존 사냥터를 누빈 여성에게서 따왔다고 한다. 어쨌든 그로부터 70년간을 짧게 요란하게 진화했으나 길이는 더 짧아 졌고 다양해 졌다.

이렇게 세상이 변하다보니 유행이 옳고 그름을 분별하려는 생각들은 실종 된지 오래다. 올 여름이 더 심했고. 가을로 계절이 옮겨갔어도 여성들의 옷 길이는 올라갈 줄 모른다. 불필요한 신체선 노출을 통해 충동 범죄를 부르고 여성 신체를 상품화하는 대중문화의 끝은 어디까지 갈까.

원래 비키니는 브래지어와 팬티로 나누어 가슴과 주요부분을 가리는 여자 수영복으로 북태평양 마셜군도의 `비키니 환초(環礁)`에서 이름을 따왔다. 1946년 7월 5일 프랑스의 한 패션쇼에서 누드 댄서 미셀린 베르나르디니가 입고나와 세상을 놀라게 했다.

이 쇼가 열리기 나흘 전 원자폭탄 실험장소가 된 비키니 환초는 여성 수영복의 이름이 돼 버렸는데 원자폭탄처럼 강렬한 노출과 숨길 곳이 없다는 두 가지 의미를 부여하는 마케팅 전략이 숨어 있다. 패션을 구성하는 요소는 형태와 색이다. 우리민족은 백의민족이라고 불리 울 만큼 색이 없는 옷을 좋아했다. 색이 강하면 점잖지 못하다는 조선시대의 관념은 지금까지도 남아있어 무채색시대가 1988년 컬러텔레비전이 등장하기까지 지속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한국 패션계는 색에 대해서 관대하지 못했지만 시대적 흐름을 막지 못했다.

동양보다는 서양이 빨리 깨어났다. 시각적으로 강렬한 인상을 주면서 상대의 영감을 자극하는 것은 단연코 색이라는 것을 알고 여성에게 먼저 입혔을 뿐이다. 우중충하고 탁한 색이 사라지고 옷· 가방· 신발· 액세서리에 이르기까지 영감을 자극하는 화려한 색깔이 거리를 알록달록하게 수놓고 있다.

색 본연의 강렬함과 생동감을 살린 `비비드(Vivid)컬러에서 형광으로 불리는 네온(NEON)컬러까지 스펙트럼도 폭넓다. 우리나라 여성 패션의 소재는 더 다양하다. 닥나무에서 가져온 여름 옷감은 별도의 가공기술이 없이도 온· 습도를 스스로 조절하고 세균· 냄새 억제효과까지 발휘되었는가하면 무채색을 좋아하는 한국인의 구미에 맞는 색이 쏟아져 나오니 번쩍이는 아이디어만 나오면 견주어 볼만하다.

올가을 겨울 이 삼십대 여성 옷은 아웃도어 옷과 평상복을 잘 섞어 입는 원색패션이 유행되고 검정을 몰아내는 카멜색(모래색깔) 배기 팬츠(엉덩이 부분이 넉넉한 바지)가 휩쓸 것으로 예측되는 등 갈수록 자극적이고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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