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친왕으로 본 조선왕조 몰락

고종 황제의 일곱째 아들이자 순종 황제와 의친왕, 덕혜옹주의 이복형제인 영친왕의 전기가 한일강제병합 100년을 맞아 약 40년 만에 다시 출간됐다.

식민지 시대인 1920년대부터 조선일보와 매일신보, 만몽일보, 서울신문 등에서 신문기자로 활약한 김을한의 영친왕 전기 `조선의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페이퍼로드 간)`이 나왔다.

책은 영친왕이라는 `열쇠구멍으로 들여다본 왕조의 몰락과 왕실 사람들의 말`로, 그리고 이를 둘러싼 현대사 이면의 숨겨진 이야기들을 당사자들의 생생한 육성에 실어 들려주는 소중한 기록이다. 이와 더불어, 황태자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자연인으로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려간 영친왕 이은씨의 안타까운 운명과 인간적인 면모를 바로 옆에서 지켜보는 것처럼 흥미진지하게 서술하고 있다.

이 책에는 영친왕뿐만 아니라 그와 인연을 맺은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아버지 고종과 형 순종은 물론이고 덕혜옹주, 명성황후, 윤대비 등 왕가의 여인들, 그리고 의친왕과 이우 공을 비롯한 왕손들의 다채로운 에피소드는 쓸쓸하지만 때로는 흐뭇한 왕실의 뒤안길을 보여준다. 영친왕의 황태자비로 간택됐다가 파혼 당함으로써 평생 처녀로 늙었던 민갑완 여사, 고종을 도와 조선의 독립을 위해 헌신하다 말년에 한국으로 돌아와 평소의 소원대로 한국 땅에 묻힌 헐버트 박사의 뒷이야기는 눈물을 자아내게 한다. 이승만과 박정희, 이토 히로부미와 맥아더 같은 역사적 인물들도 선연이든 악연이든 영친왕과 각별한 인연이 있었다. 오사카 역에서 중국의 `마지막 황제` 부의(溥儀)를 만난 것도 영친왕의 비극적인 삶에 방점을 찍는 장면이었다.

1950년 이후 영친왕을 가까이 모셔온 저자는 누구보다도 영친왕을 잘 아는 사람으로 평가되고 있다.

저자는 “영친왕 이은 씨의 파란만장하고 또 기구한 일생이야말로 우리의 머리와 가슴과 피를 뜨겁게 하는 기록이 아닐 수 없다” 고 서문에 적고 있다.

책은 물론 영친왕을 중심으로 서술됐지만, 그를 둘러싼 여러 국내외 정세와 인물들 간의 이야기를 통해 현대사의 여러 장면을 설명하는 내용으로도 손색이 없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페이퍼로드 刊, 1만4천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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